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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덕 아양율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472
한자 興德峨洋律契
영어음역 Heungdeok Ayangyulgye
영어의미역 Heungdeok Ayangyul Poetical Associatio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신순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풍류계
설립연도/일시 1935년연표보기
해체연도/일시 1945년연표보기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에 있었던 문화 예술 친목 단체.

[개설]

풍류는 고창이나 무장보다 흥덕이 더 활발하였다. 성내 3·9회, 성내 6·2계 등의 율계(律契)가 이를 말해주고 있으며, 이러한 모임은 정읍 초산율계(楚山律契)와 부안율계(扶安律契) 등과 함께 지방의 풍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설립목적]

흥덕 아양율계는 풍류계에 소속된 이들을 중심으로 사랑채나 명승지에 모여 풍류를 즐기고 이를 계승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변천]

1935년 경 흥덕의 풍류객들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정확한 해체 연도는 알 수 없으나 1935년 조직 이후 10년 동안 지속되다가 해체되었다고 한다. 이후 한 동안 공백기를 거친 후 1961년에 성내 6·2계가 탄생하게 되었다.

[활동사항]

일회(日會)·삭회(朔會)·춘추회(春秋會)를 중심으로 주요 활동이 이루어졌으며 실무는 박태술이 맡았다. 흥덕 아양율계 회원의 면모와 특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진명섭[1881년 생]은 안병태(安丙泰)에게 사사받았으며 단소·거문고·가곡에 능통하였다. 박태식[1880년 생] 역시 안병태에게 사사받았으며 거문고에 능하였다.

극승원[1891년 생]은 단소·거문고·장고 등에 능했으며 시조도 잘 지었다고 한다. 백태술[1890년 생]은 단소·거문고를 잘했다고 한다. 국휘영[1880년 생]은 단소 명인이었고 국일주[1898년 생]와 박영근[1892년 생]은 양금을 잘 탔으며, 국휘영에게 사사 받은 박태시[1895년 생]는 단소에 능하였다.

편재준[1917년 생]은 유봉에게 사사 받았으며 젓대·단소·피리·가야금·양금 명인이었다. 진태풍[1894년 생]은 가야금, 김상호[1888년 생]는 젓대·단소·피리·가야금·양금 등 각종 악기를 잘 다루었다. 가야금과 거문고에 능한 박계석[1898년 생]은 가야금은 전홍련으로부터, 거문고는 안병태로부터 사사받았다고 한다.

[의의와 평가]

고창 풍류를 대표하는 모임으로 많은 풍류객을 배출하였고 고창 지역의 풍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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