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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452
한자 仇乙院
영어음역 Gueur-won
영어의미역 Gueul-won Lodging Facility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용산리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주명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연도/일시 고려시대
시행연도/일시 고려시대
폐지연도/일시 조선 후기
시행처 국가

[정의]

고려 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용산리 일대에 설치되었던 숙박 시설.

[개설]

원(院)이 언제부터 설치·운영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 시대부터 우역(郵驛)을 설치하고 사신의 왕래처에 관(館)을 두었던 점으로 미루어 삼국 시대부터 설치되었다고 여겨진다. 원은 공공의 임무를 띤 여행자뿐만 아니라 때때로 일반 행인에게 제공되기도 하였다. 역과 함께 설치된 시설이어서 흔히 역원제도라고 일컫는다.

수령이 부근의 승려, 향리, 관리 가운데에서 원주(院主)를 임명하고 잡역을 면제해 주는 대신 원의 운영을 책임지게 하였으나, 수령이 원주를 제대로 파견하지 못하게 되면서 원우(院宇)가 낡거나 파괴되자 관리들의 이용이 줄어들었고, 임진왜란 이후에는 주막으로 바뀌기도 하였다.

[제정경위 및 목적]

공적 임무를 띠고 지방에 파견되는 관리나 상인 등에게 숙식과 편의를 제공하고자 구을원(仇乙院)을 설치하였다.

[관련 기록]

흥덕현에는 세 곳에 원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구을원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구을원은 “현의 서쪽 10리에 있다[在縣西十里].”라고 기록되어 있다.

[현황]

구을원은 지금의 고창군 부안면 용산리 굴치에 있었다. 굴치라는 이름은 구을원에서 비롯한 것인데, ‘구(仇)’자의 뜻이 별로 좋지 않으므로 ‘구을’이라는 발음을 비슷하게 살려서 굴치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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