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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부곡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432
한자 陶成部曲
영어음역 Doseong-bugok
영어의미역 Doseong-bugok Administrative District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도산리|하갑리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박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연도/일시 고려시대
시행처 국가

[정의]

고려 시대 고창 지역에 설치된 특수 행정구역.

[개설]

부곡(部曲)이란 특수 행정구역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여주목(驪州牧) 고적(古跡) 등신장조(登神莊條)에 “이제 살펴보건대 신라가 주군현을 설치할 때 그 전정(田丁)이나 호구(戶口)가 현이 될 수 없는 것은 향 또는 부곡으로 두어 그 소재하는 읍에 속하게 하였다.”라고 한 기록으로 미루어 부곡이 삼국 시대부터 존재했다는 사실과, 아울러 인구나 토지가 군이나 현의 규모에 미치지 못하는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부곡의 수는 조선 시대 들어 점차 줄어들어 1454년(단종 2)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가 편찬되었을 당시 부곡은 68개소, 1530년(중종 25) 『신증동국여지승람』이 편찬되었을 당시에는 향소부곡을 통틀어 14개소로 줄어, 여말 선초의 사회 변동 과정을 거치면서 점차 소멸되었다.

[관련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 고창현 고적조에 "도성부곡은 현 북쪽 25리에 있다[陶成部曲在縣北二十五里]."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외에도 『세종실록지리지』, 『여지도서(輿地圖書)』, 『대동지지(大東地志)』 , 『고창현읍지(高敞縣邑誌)』등에 관련 기록이 있다.

[내용]

도성부곡은 고창군에 속해 있던 부곡의 하나로 도성소(陶城所)라고도 하였다. 관련 기록을 살펴보면 『대동지지』에는 현의 북쪽 15리[약 6㎞],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고창현읍지』 등에는 현의 북쪽 25리[약 10㎞]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25리 떨어져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싶다. 『고창현읍지』 고적조에는 “현의 북쪽 25리에 있다. 지금 살펴보니 저동(猪洞)에 폐성(廢城)이 있는데 옛날 도성(陶成)의 유지가 아니겠는가.”라고 기록되어 저동에 있는 폐성을 도성의 유지로 보았다.

현재 저동이 어느 곳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 고창현 산천조에 “서교천(黍橋川)이 현의 남쪽 25리에 있는데, 근원은 구왕산에서 나와서 저촌(猪村)에 이르러 죽천과 합하여 서쪽으로 흘러서 흥덕현 장소포(長所浦)로 들어간다.”라는 기록에서 저촌을 저동으로 볼 수 있으므로 『고창현읍지』에 기록된 저동을 서교천과 죽천이 합류하는 곳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저촌은 지금의 아산면 하갑리 독곡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당시 고창현 동쪽에 해당한다.

한편, 아산면 하갑리 섬틀봉[158.3m, 일명 성틀봉]에 성터가 있는데 고창읍을 바라보는 반월형 성터이다. 현재 이 성터에 자연 석재들이 많이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자연석을 이용하여 쌓았던 성으로 추정된다. 하갑리는 조선 말기 고창군 대아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갑평 아래쪽이 되므로 아래갑평·하갑평·하갑이라 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마평리·송암리·봉동·내독리·상갑리 각 일부를 병합하여 하갑리라 하고 아산면에 편입하였다.

[현황]

도성부곡의 중심지가 정확히 어느 곳에 있었는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으나 대체로 아산면 하갑리 독곡(篤谷)이나 도산리 일대로 추정하고 있다. 도성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로 『증보문헌비고』에 도성최씨가 나온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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