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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426
한자 高麗時代
영어음역 Goryeo Sidae
영어의미역 Goryeo Period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주명준

[정의]

918년부터 1392년까지 존속한 전라북도 고창 지역의 고려 왕조 시대.

[개설]

918년 왕건(王建)[877~943]이 건국한 고려는 1392년 이성계(李成桂)[1335~1408]의 조선에 멸망할 때까지 34대 474년 간 존속한 왕조이다. 현재의 전라북도 고창 지역은 고려 시대에는 고부군에 속한 상질현(尙質縣)과 영광군에 속한 장사현(長沙縣), 고창현(高敞縣), 무송현(茂松縣) 등 네 개의 현으로 나뉘어 있었다. 고려는 통일 전쟁 기간부터 군현의 주속 관계를 통해 지방을 지배하였다.

통일을 이룬 지 4년이 지난 940년(태조 23)에는 그동안 형성되었던 군현의 주속 관계를 제도적으로 추인하는 조처를 취하였다. 당시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 설치된 군현 단위의 읍호도 통일 신라 시대 때에 사용하던 고부군의 상질현, 영광군의 장사현, 고창현, 무송현 등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행정 구역]

고창 지역은 노령산맥의 북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동남쪽이 산으로 둘러져 있고, 서북은 바다에 연해 있으며, 완만한 평야지대를 이루어 일찍부터 많은 사람이 거주하고 있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지리지」조를 보면 고려 시대 고창 지방의 행정 명칭을 알 수 있다. 고부군은 “본래 백제의 고사부리군이며 신라 경덕왕 때 고부군으로 고쳤다. 고부군은 세 현을 거느렸는데 부령현과 희안현 그리고 상질현이 그것이다. 상질현은 본래 백제의 상칠현(上柒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상질현으로 고쳐 고려조에서도 그대로 상질현으로 불렀다.”고 하며, 무령군은 “본래 백제의 무시이군(武尸伊郡)이며 신라 경덕왕 때 지금의[고려] 영광군으로 고쳤다. 영광군은 세 현을 거느렸다. 장사현은 본래 백제의 상로현(上老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고쳐서 장사현이라 했고, 고창현은 본래 백제의 모량부리현이었는데 경덕왕 때 고쳐서 지금의 고창현이 되었고, 무송현은 본래 백제의 송미지현(松彌知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고쳐서 지금의 무송현이 되었다.”고 한다.

이 자료를 정리하면 고려 시대 고창 지역의 행정 구역은 고부군에 속한 상질현과 영광군에 속한 장사현, 고창현, 무송현 등 네 개의 현으로 나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창현은 통일 신라 시대에는 무령군[영광군]의 영현이 되었고, 고려 초기에 고부군에 속했다가 상질감무(尙質監務)가 겸했다. 장사현은 영광군에 속했으며, 무송현도 초기에는 영광군에 속했다가 장사감무가 겸임하였다. 또한 상질현은 고부군에 속했다가 장덕(章德)[혹은 창덕]으로 고쳐 감무를 두고, 고창을 겸무하게 하였다.

특히 고창 지역은 지리적인 위치 때문에 고려 시대부터 전라남도 지방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는데, 이는 당시의 장사현무송현이 나주목 영광군에 속해 있는 것으로도 입증된다. 1308년 충선왕이 즉위하자 왕명을 피해 장덕을 흥덕으로 개칭하였다.

[인물]

유응규(庾應圭)는 무송인으로, 정중부(鄭仲夫)의종(毅宗)을 폐하고 명종(明宗)을 세운 뒤, 공부낭중(工部郎中)이 되어 금(金)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선위(禪位)한 사실을 알린다. 그런데 금나라 왕이 명종의 표(表)에 회답을 않는지라, 7일간 식음을 전폐해 회신을 받고 돌아와서 공신에 책봉되었다.

김인우(金仁雨)는 고려 말에 전리판서(典理判書)와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역임하였다.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의 난 때 왕을 호위하여 복주(福州)[안동]로 무사히 모신 공로로 호종공신(扈從功臣) 1등에 녹훈되었다. 윤회(尹淮)무장[현 고창] 사람으로 공민왕 때에 판서를 지낸 윤소종(尹紹宗)의 아들이다. 학문이 높고 사학(史學)에 능하여 벼슬이 대제학에 이르렀다. 윤회는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청백리였다.

[유물·유적지]

1. 고창 용계리 청자요지(高敞龍溪里靑磁窯址)

고창군 아산면용계리 청자 요지는 고려 시대의 요지로 아산댐 뒤쪽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1983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연구소에서 발굴 조사를 할 당시에 남단의 퇴적구릉 1기와 그 주변 건물지를 조사하였다. 그 결과 3개의 가마가 중첩되어 발견되었다. 중간의 가마가 38m, 최후의 가마가 14m, 가마 너비 1.1m인 긴 등요(登窯)로 경사진 면을 갑발(匣鉢)로 받쳐 수평을 이루었고, 가마벽과 천장은 돌과 점토를 섞어 쌓아올린 것이 확인되었다. 이는 11세기를 중심으로 하여 제작 활동을 하였던 고려 초기의 청자 가마터로 추정된다. 용계리 청자 요지는 40×80m에 걸쳐 갑발편(匣鉢片)과 청자편·가마벽편들로 거대한 4개의 퇴적 구릉을 이루고 있다. 이는 1991년에 사적 제345호로 지정되었다. 지정 면적은 22,577㎡이다.

2. 선운사 육층석탑(禪雲寺六層石塔)

아산면 선운사에 있는 선운사 육층석탑은 고려 시대의 석탑이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9호이다. 방형 축대 내에서 지대석(地臺石)을 짜고 그 위에 방형 1석의 상변을 둥글게 다듬은 하대석을 얹고, 그 위에 방형 중석을 세웠다. 이 중석은 우주(隅柱)[모서리 기둥]를 본떠서 새긴 2매의 면석을 앞뒤에 세우고, 좌우에는 이 전후 면석의 측면후를 우주로 한 면석을 방형으로 조합하였다.

3. 흥덕 당간지주(興德幢竿支柱)

교운리 흥덕향교에 있는 흥덕 당간지주는 고려 시대의 것이다. 높이 3.09m이며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되어 있다. 흥덕향교 일대는 사찰이 있었던 곳으로 향교 입구에 커다란 당간 지주만 남아 있다. 지주의 꼭대기에서 약 50㎝쯤 내려온 곳에 8판중엽(八瓣重葉)의 연화문을 새기고 다시 50㎝쯤 내려와 같은 형식의 연화문이 각각 새겨져 있다. 제일 아래의 연화문 하단에서 약 1m 내려온 곳에는 횡대가 둘러져 있다. 연화문의 조각 수법으로 보아 조성 연대는 고려 시대 초기로 추정된다.

4. 선운사 지장보살좌상(禪雲寺地藏菩薩坐像)

아산면 삼인리 선운사 도솔암에 있는 선운사 지장보살좌상은 고려 시대의 보살상이다. 높이 96.9㎝이며, 보물 제280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좌(臺座)·광배(光背)가 없어지고 불신(佛身)만 완전하게 남아 있다. 상체가 늘씬하면서도 당당한 편이어서 고려 후기의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보물 제337호]이나 충청남도 서산의 문수사 금동불좌상과 흡사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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