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331
한자 浦口
영어음역 Pogu
영어의미역 Port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변남주

[정의]

조선 시대 고창 지역의 배가 드나드는 개의 어귀.

[개설]

포구(浦口)는 바닷물이나 강물이 드나드는 ‘개[浦]’ 중에서 배가 입·출항하는 곳을 말한다. 위치에 따라 바닷가에 있는 해상 포구와 강가에 있는 강상 포구로 나눌 수 있고, 기능에 따라 비교적 가까운 거리를 건너는 나루와 배가 입·출항하는 포구로 나누어진다. 조선 시대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는 서쪽 해안의 무장현과 흥덕현을 중심으로 배가 드나들었던 해상 포구가 발달되어 있었다.

[관련 기록]

조선 시대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는 무장현과 흥덕현을 중심으로 배가 드나들었던 해상 포구가 발달되어 있었다. 조선 시대 문헌 기록에 의하면 무장현에는 세십포(細十浦)·검당포(黔堂浦)·선운포(仙雲浦)·금물여포(今勿礜浦)·경포(景浦)·구시포(仇時浦)·고전포(高田浦)·고리포(古里浦)·소응포(所應浦)·장사포(長沙浦)·석교포(石橋浦)·동백정포(冬柏亭浦) 등의 포구가 있었으며 흥덕현에는 사진포(沙津浦)·선운포(仙雲浦)·장소포(長所浦) 등의 포구가 있었다. 그러나 해안 갯벌의 간척으로 인해 고리포를 제외한 나머지 옛 포구들은 현재 원형 그대로 남아있지 않다. 조선 시대 무장현과 흥덕현에 있었던 포구의 위치는 다음과 같다.

세십포(細十浦)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무장현의 북쪽 40리에 있으며 어량이 있다”고 하였는데, 지금의 심원면 하전리의 서북쪽 작은 고실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동지지(大東地志)』에서 말하는 서시포(西施浦)와 동일한 곳인 듯하다. 조선 시대에 ‘살마기’라고 하는 고기잡이 시설이 있었으며, 세십(細十)은 작은 고실이라고 하는 지명의 한자음으로 여겨진다. 검당포(黔堂浦)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무장현의 북쪽 35리에 있다”고 하였는데 지금의 심원면 월산리 검당마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선운포(仙雲浦)는 『신증동국여지승람』기록상으로 무장현과 흥덕현 두 곳에 위치한다, 무장현의 선운포는 “무장현의 북쪽 35리에 있다”고 하였는데 『청구도』 등의 옛 지도에 의하면 연기마을 건너편 선운사의 입구로 기록되어 있다. 흥덕현의 선운포는 “흥덕현의 서쪽 20리에 있다”고 하였는데 『호구총수』에 흥덕현 이서면 선운포리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현재의 부안면 진마마을 북단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금물여포(今勿礜浦)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무장현의 북쪽 30리에 있다”고 하였는데 지금의 심원면 두어물에 있었던 듯하다. 금물여(今勿礜)와 두어물(斗於勿)은 유사음으로 한자 표기의 차이로 인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경포(景浦)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무장현의 북쪽 30리에 있다”고 하였는데, 지금의 해리면 광승리 서쪽 외경마을의 동쪽에 있었다. 이칭으로 ‘볏개’라고도 하였다. 구시포(仇時浦)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무장현의 북쪽 30리에 있다”고 하였는데, 지금의 상하면 자룡리 구시포 마을에 있었다. 영광 법성포를 출발한 세곡선이 첫 번째 정박하는 곳이었다. 현재 인근의 해변은 명사십리 해수욕장과 해수월드로 유명하다.

고전포(高田浦)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무장현의 북쪽 20리에 있으며 염분(鹽盆)이 있다”고 하였는데, 지금의 심원면 고전리 서쪽에 있었다. 고리포(古里浦)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무장현의 서쪽 20리에 있다”고 하였는데, 지금의 자룡리 고리포마을이다. 고리포의 뒷산에는 봉화대가 있었다.

소응포(所應浦)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무장현의 북쪽 20리에 있으며 봉수대가 있다”고 하였는데, 지금의 해리면 동호리 솔개[소리개]인 것으로 추정되며, 소리개의 남쪽에 해당하는 방축리의 봉화산에 봉화대가 있었다. 당시에는 궁산리 저수지까지 바다였다.

장사포(長沙浦)는 『대동지지』에 의하면 “무장현의 서북쪽 28리에 있다”고 하였는데 지금의 해리면 장호마을 동쪽이다. 석교포(石橋浦)는 『대동지지』에 의하면 “무장현의 서쪽 15리에 있다”고 하였는데 지금의 공음면 석교리 창촌마을의 남서쪽이다. 조선 후기 석교포에는 무장현의 해창이 있었으며, 무장현의 대동미를 수납하여 일시 보관하는 대동창이 있었다. 조수는 영광의 법성포의 입구로 통하였다.

동백정포(冬柏亭浦)는 『무장군읍지』에 의하면 “무장군의 북쪽 30리에 있다”고 하였는데 지금의 해리면 동호리 구동호마을 동쪽에 있었다. 북쪽 해안에는 영신당이 있다. 사진포(沙津浦)는 『여지도서』등에서 “흥덕현의 서쪽 6리에 있다”고 하는 곳으로 지금의 흥덕면 사포리 북단에 있었다. 상선들이 정박하는 곳으로 흥덕현의 중심항이었다. 조선 후기에는 흥덕현의 해창이 설치되어 한때 고창현·흥덕현 등의 전세와 균세, 대동미를 수납하여 한양의 경창으로 운반하였다,

장소포(長所浦)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흥덕현의 장소포라 하는 것으로 보아 아산면 강정마을 인근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강정마을 앞은 밀물 시 소(沼, 淵, pool)를 형성했으며 근대까지 어선들의 가항종점이었다. 지금의 주진천[인천강] 하류 물길인 장소(長所)에 있었던 포구로 여겨지며, 장소(長所)는 장소(長沼)의 그릇된 한자 표기이다. 장소(長所)의 이칭으로는 장연(長淵), 장담(長潭)이라고도 하였다. 세칭 장연강, 장숙강, 장단강으로도 불리었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