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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054
한자 西海
영어음역 Seohae
영어의미역 The West Sea
이칭/별칭 황해(黃海)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지명/자연 지명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정길이영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바다

[정의]

전라북도 고창군 서부 해안에 있는 바다.

[명칭유래]

대한민국에서는 서해(西海), 중국에서는 황해(黃海)가 국제 표준으로 쓰인다. 서해는 우리나라의 서쪽에 위치한 바다이고, 황해는 중국 황하의 토사가 유입되어 바다 색깔이 대체로 황색으로 보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에서는 서해로 표기하는 것이 옳다.

[자연환경]

고창군의 북부 지역인 부안면은 북서쪽과 동북쪽이 서해의 해안선에 접해 있고, 고창군의 젖줄인 주진천[인천강]이 흐르고 있다. 고창군 북서쪽 끝에 있는 해리면은 서쪽이 서해안을 끼고 있는 해안 지대이다. 고창군의 해안선은 전라북도 부안군과의 군계에서부터 고창군 상하면, 해리면, 심원면, 부안면, 흥덕면 등 5개 면에 걸쳐 총 연장 약 79㎞에 달한다. 그 중 육지부의 해안선은 약 74㎞이며, 섬의 해안선은 약 5㎞이다. 해안선은 굴곡이 심하여 넓은 하해 혼성 평탄지를 형성하는데, 이런 평탄지를 따라 남한에서는 거의 유일한 대규모 염전과 군소 염전이 흩어져서 위치해 있다. 동호해수욕장 근처에 있는 삼양염전은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염전으로 연간 약 2만 5000톤의 생산 능력을 갖고 있다.

[교통로로서 서해]

고창 일대의 서해는 옛부터 교통로로 이용되어 왔다. 조선 시대 문헌 기록에 의하면 무장현에는 세십포(細十浦)·검당포(黔堂浦)·선운포(仙雲浦)·금물여포(今勿礜浦)·경포(景浦)·구시포(仇時浦)·고전포(高田浦)·고리포(古里浦)·소응포(所應浦)·장사포(長沙浦)·석교포(石橋浦)·동백정포(冬柏亭浦) 등의 포구가 있었으며 흥덕현에는 사진포(沙津浦)·선운포(仙雲浦)·장소포(長所浦) 등의 포구가 있었다. 2010년 현재 구시포(仇時浦)와 동백정포(冬柏亭浦)였던 동호항, 고리포(古里浦) 정도만이 포구와 항구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삶터로서 서해]

고창군의 해안선은 고창군 상하면, 해리면, 심원면, 부안면, 흥덕면 등 5개 면에 걸쳐 있다. 그리고 고창군 서해상에 5개의 섬이 있다. 고창군 심원면 만돌리 미여도[쌍여도]·고창군 상하면 자룡리 가막도·고창군 심원면 만돌리 소죽도는 무인도이며, 고창군 심원면 만돌리 대죽도·고창군 부안면 봉암리 내죽도는 유인도이다. 이렇듯 고창군 일대 서해와 접한 지역은 바다가 삶터이기 때문에 바다와 관련된 문화와 산업이 형성되었다.

2005년 농림어업총조사에 의하면 고창군의 어업 호수는 429호이고 어업 인구는 1,095명에 달한다. 2009년 고창군 어선 보유 척수는 264척이고 천해 양식업은 240개소, 내수면 양식업은 262개소에 달한다.

심원면은 고창군에서 북서쪽으로 30㎞ 쯤 가면 서해 바다와 연결되어 있다. 백합과 어패류가 많이 생산되며, 만돌리하전리의 갯벌 생태 체험이 유명하다. 궁산마을은 1937년에 제방을 쌓았고, 삼양사의 간척 사업으로 바다가 농경지로 변했다. 만돌마을은 바다에 제방을 쌓아 육지로 변한 마을이고, 앞바다는 갯벌 생태 체험장으로 유명하다. 하전마을은 어부가 고기를 잡는 형국으로, 어패류 양식장과 갯벌 생태 체험장이 있다. 용기마을은 뒷산이 용이 꿈틀거리는 형상으로 어민들이 천막을 치고 고기를 잡았다. 수다동은 원래 바닷물이 마을 앞 갯벌에 있는 모래까지 차올라 사다동(沙多洞)으로 불렸다. 검단선사가 검정샘에서 소금을 굽고 손을 씻어서 물이 흐리고, 물맛이 짜다고 하며, 1950년까지 소금을 생산하였다.

부안면 주촌마을에는 소금을 생산하는 염전과 해수욕장이 있고, 1980년에는 천주교에서 야고마의 집이라는 양로당을 설립하고 간척지를 농경지로 일구어 부촌이 되었다. 상포마을은 1900년까지 어판장이 있을 정도로 어업이 발달했으나 지금은 조개 채취와 농사를 짓고 있다. 반월마을 주민들은 조개와 새우잡이를 주업으로 했으나, 지금은 양식업이 발달하였다. 고잔마을에서도 예전에 소금을 생산하였다.

해리면 동호리 각동마을 주민들은 과거에는 바다에 의존해 소금을 생산하였으나. 지금은 관음포 간척 공사로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구동호마을은 조선 중종 때 어항과 무역항으로 조성되었고, 동백나무가 많아 동백정으로 불리다가 죽도와 변산반도 바다가 호수처럼 보여 동호(冬湖)로 고쳤다. 지금도 동호리에는 동호항이 항구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동호마을에서는 2월 초하루에 풍어제 성격의 마을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는 삼양동마을은 1946년 삼양사에서 간척한 간척지에 농사를 짓기 위해 형성된 마을이다. 신동호마을은 1940년 간척 공사로 전국 노동자들이 정착한 마을이다.

상하면 자룡리에 있는 구시포(九市浦)의 우거진 송림과 명사십리로 해당화가 피는 구시포해수욕장이 유명하다.

흥덕면 사포리 주항마을에서 일제 강점기에 소금을 생산했다. 사포마을은 어선의 접안이 편리해서 고려 말부터 조선 전기까지 활발한 항구로 왜적들의 침입이 잦았다. 19세기까지 호남 내륙의 해산물 운송처였으나 토사의 유입으로 폐항되었다. 후포마을은 사포항이 폐항되면서 호남 지역의 해산물을 공급하는 항구였으나, 8·15 해방 후 퇴적 작용으로 역시 폐항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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