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표제어 > 한글항목명 > 가

  • 가난했던 시절의 자화상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질마재 를 넘어 서해 쪽으로 들어가다 보면 어느새 부안면 선운리 진마마을로 들어서게 된다. 마을은 그리 크지 않지만 예전에는 150여 가구가 모여 살았던 제법 규모 있는 마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살림은 썩 넉넉하지 않아서, 서정주 시인이 자서전에 술회한 것처럼, 소작을 짓거나 배를 타거나 소금을 굽거나 어물 행상으로 간신히 살아 나갈 수 있었다. 서정주 시인의 아버지 역시 인촌...

  • 가느실세곡리(細谷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세곡리는 좁은 골짜기라 ‘가느실’ 또는 ‘세곡(細谷)’이라고 하였다 한다. 1650년경 남평문씨(南平文氏) 문천두(文天斗)가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이남면(二南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서세리(西細里)·남세리(南細里)·관동리(冠洞里)·은정동...

  • 가다(家茶)차나무(茶-)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일대에서 서식하고 있는 쌍떡잎식물 측막태좌목 차나무과의 상록 활엽 관목. 차나무는 다수(茶樹), 가다(家茶), 고다(古茶), 작설(雀舌) 등으로도 불렸다. ‘茶’는 다 또는 차라고 발음하는데, 당나라 때까지 다로 쓰이다가 송나라 때에 이르러 차로 변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차라는 말이 구어로 먼저 들어오고, 다는 후에 들어와 자전(字典)의 음이 되었다....

  • 가마 자리요지(窯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 있는 고려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가마 터. 요지(窯址)는 토기·질그릇·오지그릇·도자기·기와·벽돌·숯 등을 구워내는 시설로서 가마 터·가마자리 등으로도 불린다. 옛날에는 토기를 가마 속에 넣지 않고 그대로 맨 땅 위에 쌓은 후, 그 위에 많은 장작이나 섶을 덮고 불을 질러 구워내는 방법도 사용하였다. 우리나라는 중국에 이어 일찍부터 도자기가 발달하였다....

  • 가마 터요지(窯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 있는 고려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가마 터. 요지(窯址)는 토기·질그릇·오지그릇·도자기·기와·벽돌·숯 등을 구워내는 시설로서 가마 터·가마자리 등으로도 불린다. 옛날에는 토기를 가마 속에 넣지 않고 그대로 맨 땅 위에 쌓은 후, 그 위에 많은 장작이나 섶을 덮고 불을 질러 구워내는 방법도 사용하였다. 우리나라는 중국에 이어 일찍부터 도자기가 발달하였다....

  • 가마골부곡리(芙谷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부곡리는 지형이 가마처럼 생겨 ‘가마골’ 또는 ‘부곡(芙谷)’이라 하였다고 한다. 1400년대 연안이씨(延安李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수곡면(水谷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장암리(場岩里)·연동(連洞)·신평리(新平里)·증산리(甑山里)와 고사면(古沙面)...

  • 가문의 종부로 살아온 세월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순임 씨의 친정은 고창군 해리면 송산리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순임 씨를 ‘송산댁’이라고 부른다. 조순임 씨는 열여덟 살이었던 1940년에 이곳 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에 사는 스무 살의 유내옥 씨와 혼인을 했다. 혼례를 올리고 난 뒤 1년을 친정에서 묵힌 뒤[예전에는 신랑ㆍ신부가 혼례를 올리고 난 뒤 바로 시댁으로 가지 않고 신부가 친정에서 몇 달 혹은 몇 년 간을 살다가 시댁으...

  • 가배추석(秋夕)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음력 8월 15일에 지내는 명절. 추석은 음력 8월 보름으로 ‘한가위’, ‘가위’, ‘가우’, ‘가배’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더도 덜도 말고 이날만 같아라.”라는 말과 같이 가장 풍성한 시기에 지내는 명절이다. 추석에는 조상을 위하는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간다. 추석 음식으로는 송편을 만들어 먹는다. 송편은 추석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그 해 수확한 쌀로...

  • 가슴에 화병으로 남은 내 아이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부안면 선운리 진마마을에서 ‘반암댁’으로 불리는 김수금[1925년생] 씨는 젊어서 9남매를 낳았지만 그 중 다섯을 내리 잃어버리고 이날까지 평생 가슴 속에 화병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 할머니는 친정인 아산면 탑정에서 열아홉에 혼례를 올리고 3년을 친정에서 살다가 1946년에 시댁인 진마마을로 들어왔다. 혼례를 올릴 당시[1944년] 신랑은 스물여덟 살이나 먹은 노총각이었다. 그때...

  • 가시련가시연꽃(-蓮-)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하장리의 석남저수지[용대저수지]에서 서식하고 있는 쌍떡잎식물 미나리아재비목 수련과의 한해살이풀. 가시연꽃은 멸종 위기 식물 Ⅱ급으로 분류된다. 전라북도에는 약 2,200개의 저수지가 있는데, 석남저수지[용대저수지] 외에도 가시연꽃이 서식하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온다. 그러나 저수지를 관리하고 있는 한국농어촌공사나 시·군에는 가시연꽃 분포 현황에 대한 자료가 없...

  • 가시연가시연꽃(-蓮-)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하장리의 석남저수지[용대저수지]에서 서식하고 있는 쌍떡잎식물 미나리아재비목 수련과의 한해살이풀. 가시연꽃은 멸종 위기 식물 Ⅱ급으로 분류된다. 전라북도에는 약 2,200개의 저수지가 있는데, 석남저수지[용대저수지] 외에도 가시연꽃이 서식하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온다. 그러나 저수지를 관리하고 있는 한국농어촌공사나 시·군에는 가시연꽃 분포 현황에 대한 자료가 없...

  • 가시연꽃(-蓮-)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하장리의 석남저수지[용대저수지]에서 서식하고 있는 쌍떡잎식물 미나리아재비목 수련과의 한해살이풀. 가시연꽃은 멸종 위기 식물 Ⅱ급으로 분류된다. 전라북도에는 약 2,200개의 저수지가 있는데, 석남저수지[용대저수지] 외에도 가시연꽃이 서식하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온다. 그러나 저수지를 관리하고 있는 한국농어촌공사나 시·군에는 가시연꽃 분포 현황에 대한 자료가 없...

  • 가신신앙가정신앙(家庭信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집안을 지켜 주는 신들에게 제의를 올리며 평안을 비는 신앙. 가정 신앙은 집 안에서 부녀자들이 사제자가 되어 가족들의 안위와 건강을 기원하며 올리는 정기적·비정기적인 의례 행위이다. 이를 가택신앙, 가신신앙 등이라고도 한다. 고창 지역에서 모시고 있는 가정 신앙의 대상은 성주, 조상, 조왕, 삼신, 천룡, 칠성, 업 등으로 나타난다. 이들 신들은 집안 요소요...

  • 가우추석(秋夕)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음력 8월 15일에 지내는 명절. 추석은 음력 8월 보름으로 ‘한가위’, ‘가위’, ‘가우’, ‘가배’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더도 덜도 말고 이날만 같아라.”라는 말과 같이 가장 풍성한 시기에 지내는 명절이다. 추석에는 조상을 위하는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간다. 추석 음식으로는 송편을 만들어 먹는다. 송편은 추석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그 해 수확한 쌀로...

  • 가위추석(秋夕)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음력 8월 15일에 지내는 명절. 추석은 음력 8월 보름으로 ‘한가위’, ‘가위’, ‘가우’, ‘가배’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더도 덜도 말고 이날만 같아라.”라는 말과 같이 가장 풍성한 시기에 지내는 명절이다. 추석에는 조상을 위하는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간다. 추석 음식으로는 송편을 만들어 먹는다. 송편은 추석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그 해 수확한 쌀로...

  • 가정신앙(家庭信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집안을 지켜 주는 신들에게 제의를 올리며 평안을 비는 신앙. 가정 신앙은 집 안에서 부녀자들이 사제자가 되어 가족들의 안위와 건강을 기원하며 올리는 정기적·비정기적인 의례 행위이다. 이를 가택신앙, 가신신앙 등이라고도 한다. 고창 지역에서 모시고 있는 가정 신앙의 대상은 성주, 조상, 조왕, 삼신, 천룡, 칠성, 업 등으로 나타난다. 이들 신들은 집안 요소요...

  • 가죽나물가죽잎나물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참죽나무의 어린잎으로 무침, 전, 부각, 쌈 등으로 만들어 먹는 전라북도 고창 지역의 향토 음식. 참죽나무는 먹구슬나무과에 속하는 낙엽 활엽 교목으로 중국에서 고려 말엽에 들어온 귀화 식물이다. 중부 이남과 해안에 주로 생육하여 수평적으로 서해안 백령도와 동해안 설악산 입구까지 단목으로 자생한다. 봄철에 나는 참죽나무의 새순을 가죽잎나물이라고 하며 연엽채, 춘엽채(椿葉菜)라고도 한...

  • 가죽잎나물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참죽나무의 어린잎으로 무침, 전, 부각, 쌈 등으로 만들어 먹는 전라북도 고창 지역의 향토 음식. 참죽나무는 먹구슬나무과에 속하는 낙엽 활엽 교목으로 중국에서 고려 말엽에 들어온 귀화 식물이다. 중부 이남과 해안에 주로 생육하여 수평적으로 서해안 백령도와 동해안 설악산 입구까지 단목으로 자생한다. 봄철에 나는 참죽나무의 새순을 가죽잎나물이라고 하며 연엽채, 춘엽채(椿葉菜)라고도 한...

  • 가택신앙가정신앙(家庭信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집안을 지켜 주는 신들에게 제의를 올리며 평안을 비는 신앙. 가정 신앙은 집 안에서 부녀자들이 사제자가 되어 가족들의 안위와 건강을 기원하며 올리는 정기적·비정기적인 의례 행위이다. 이를 가택신앙, 가신신앙 등이라고도 한다. 고창 지역에서 모시고 있는 가정 신앙의 대상은 성주, 조상, 조왕, 삼신, 천룡, 칠성, 업 등으로 나타난다. 이들 신들은 집안 요소요...

  • 가톨릭천주교(天主敎)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로마 가톨릭교. 한국의 천주교는 자생적으로 출발했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와 다르다. 즉 한국에서 천주교는 18세기 후반에 조선의 일부 학자들이 중국을 왕래하는 사신들을 통해서 들어오는 천주교 서적을 접하고 이를 읽고 연구하면서 처음 시작되었다. 특히 근기 지역의 남인계 학자들 중 일부가 천주교의 교리를 이해하고 이를 실천해 보고자 하는 움직임을...

  • 가평리(加平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가평리는 고려 때 갑향(甲鄕)이 있어 갑향이라 하다가 ‘가평(加平)’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뚜렷한 기록은 확인할 수 없으나, 고려 시대에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일남면(一南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가평리(加平里)·백계동(白溪洞)·갈촌(葛村)·노동(蘆洞)과 이남면(二南面)...

  • 가평리 가평천룡당산(加平里加平天龍堂山)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에 있는 당산. 천룡신은 마을 수호신이다. 천룡은 하늘의 용신을 의미하는데, 고창 지역에서는 마을 주산에 천룡당이 위치한다. 정월 열나흗날에 가평리 가평마을 천룡당산에서 천룡제를 지내 천룡을 강신시킨다. 가평리 가평마을 천룡당산은 마을 뒤쪽 평지에 위치하고, 대나무숲이 조성되어 있다. 화강암으로 만든 제단석은 천룡제를 위한 단석이다. 고창 지역에서 가평...

  • 가평리 당산 선돌(加平里堂山-)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고색창연마을에 있는 당산 선돌. 가평리 당산선돌은 2기가 있는데, 1기는 당산나무 아래에 위치한 당산 신체로서 선돌과 제단을 갖추고 있으며, 다른 1기는 음력 정월 대보름에 줄다리기를 한 뒤에 용줄을 감는 당산 선돌이다. 고색창연마을 입구 마을 앞면에 있다. 가평리 당산선돌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자연 선돌이다. 가평리의 선돌은 2기가 있는데, 1기는...

  • 가평리 이장으로 살아 온 세월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고남규 씨는 현재 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이장을 맡고 있다. 그가 마을 이장을 맡은 것은 이번이 두 번째로, 처음 마을 일을 맡았을 때[1958년 2월]는 불과 열아홉 살의 풋내기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이장 직을 내놓고 지금까지 학교 일과 향교 일만 거들며 살아온 그가 오랜 시간이 흘러서 올해[2009년, 2008년 12월 선출] 다시 이장이 되었다. 하지만 이장이든 아니든 자신...

  • 가평마을 시정신림면 고색창연 모정(新林面古色蒼然茅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고색창연마을에 있는 정자. 농촌 체험 마을로 알려진 고색창연마을은 고씨, 기씨, 유씨가 많이 사는 마을로, 초가집을 비롯한 옛 모습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마을 남쪽과 북쪽에 각각 건립 연대가 40여 년 차이가 나는 모정 두 채가 있다. 모정은 시정이라고도 불린다. 마을 입구 남쪽 들판에 할아버지 시정이 있고, 마을 북쪽에 새로 지은 할머...

  • 가평초등학교(加平初等學校)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스스로 찾아서 배우는 어린이, 아름다움을 가꾸는 어린이, 새롭게 생각하는 어린이, 몸이 튼튼한 어린이, 이웃을 사랑하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1955년 4월 1일 신림국민학교 가평분교장으로 인가받았으며, 1958년 4월 가평국민학교로 승격되어 개교하였다. 1983년 신림국민학교 병설유치원을 인가받았고, 1984...

  • 각본희곡(戱曲)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공연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연극 대본. 고창을 소재로 한 희곡 작품이나 고창 출신 극작가는 찾을 수가 없다. 신재효·김소희·진채선 등 고창을 상징하는 문화계 인물들을 테마로 한 작품은 전통 연희를 매체로 하고 있으며, 1970년대 후반 극작가 허규가 신재효와 진채선의 삶과 사랑을 소재로 한 희곡 「광대가」를 발표했는데, 이 역시 오광대·사당패·말뚝이 등의 연희...

  • 간척지 사업(干拓地事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1936~1954년 이루어진 고창 지역의 간척지 사업. 줄포만[곰소만] 일대의 간척지는 1990년대 들어 인근 전라남도 영광군에 영광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선 후 원전 배출 온수로 고기들이 살 수 없게 되어 어민들이 이에 대한 배상을 받은 후 양식장을 잇달아 폐쇄함에 따라 간척지 관리가 소홀해지면서 제방이 허물어지는 등 사실상 방치된 상태가 되었다. 이에 대하여 고창군은 심원면 만돌리·...

  • 갈곡천(葛谷川)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방장산에서 발원하여 부안면 중흥리에서 서해로 흘러드는 하천. 신림면 가평리 방장산 북쪽 갈촌(葛村)에서 발원하여 세곡(細谷)까지의 각 골짜기의 물을 합류시키기 때문에 갈곡천으로 불리고 있다. 갈곡천은 해천(蟹川), 혹은 ‘게내’라고도 하였다. 곰소만[줄포만]으로 직접 유입되는 해안과 인접한 하천으로 하상이 점토 및 실트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잡초와 수...

  • 갈공사지 당간지주흥덕당간지주(興德幢竿支柱)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교운리 갈공사지에 있는 고려 시대 당간 지주. 흥덕당간지주는 고려 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주민에 의하여 일곱 조각으로 절단되었던 것을 1983년 12월경에 수습, 복원하여 다시 세워놓았다고 한다. 1973년 6월 23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되었다. 흥덕당간지주의 위치와 지리적 조건으로 보아 향교와 함께 교운마을 일대에 사찰이 있었던 것...

  • 갈마리(渴馬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에 속하는 법정리이자 행정리. 갈마리는 풍수지리상 마을의 지형이 갈마음수(渴馬飮水)[목마른 말이 물을 먹는] 형국이라 하여 ‘갈마(渴馬)’라고 하였다 한다. 1470년경 신천강씨(信川康氏) 강윤석(康允碩)이 터를 잡고, 임진왜란 이후 나주오씨(羅州吳氏) 오희량(吳希亮)이 들어와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장자산면(莊子山面)의 지역으로, 19...

  • 감남기강남리(江南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 속하는 법정리. 강남리는 마을에 감나무가 많아서 감남기·감낭기·감냉기 또는 시목리라 하다가 음이 변하여 강남(江南)이 되었다. 조선 말기 무장군 탁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강남·장두(獐頭)·낙양(洛陽)·덕산(德山) 등을 병합하여 강남리라 하고 고창군 석곡면에 편입하였고, 1935년 3월 1일 도령 제1호에...

  • 감낭기강남리(江南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 속하는 법정리. 강남리는 마을에 감나무가 많아서 감남기·감낭기·감냉기 또는 시목리라 하다가 음이 변하여 강남(江南)이 되었다. 조선 말기 무장군 탁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강남·장두(獐頭)·낙양(洛陽)·덕산(德山) 등을 병합하여 강남리라 하고 고창군 석곡면에 편입하였고, 1935년 3월 1일 도령 제1호에...

  • 감냉기강남리(江南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 속하는 법정리. 강남리는 마을에 감나무가 많아서 감남기·감낭기·감냉기 또는 시목리라 하다가 음이 변하여 강남(江南)이 되었다. 조선 말기 무장군 탁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강남·장두(獐頭)·낙양(洛陽)·덕산(德山) 등을 병합하여 강남리라 하고 고창군 석곡면에 편입하였고, 1935년 3월 1일 도령 제1호에...

  • 감동젓세하젓(細蝦-)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북도 고창 구시포에서 나는 가는 새우에 소금을 넣어 담근 젓갈. 세하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전라남도 서해와 남해 청정 바다와 내륙 청정 하천이 만나는 곳에서만 잡히는 바다 새우로 매우 작고 연하며 갓 잡았을 때는 몸체가 아주 투명하다. 젓을 담그면 연하게 숙성된다 하여 ‘가늘 세(細)’자와 ‘새우 하(蝦)’자를 써서 세하젓이라고 한다. 세하젓은 고창 지역에서 4~6월에 어획하여...

  • 감모재스무재서당 터(-書堂-)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검산리에 있던 조선 후기 교육 기관. 고창 지역의 대표적인 서당으로는 고창읍 주곡리의 판경당(瓣敬堂)과 상하면 검산리의 스무재서당, 고수면의 김기서 강학당(金麒瑞講學堂), 흥덕면 흥덕리의 관서당(觀書堂), 그리고 고창읍의 도산서당이 있다. 유학자 김도의(金道誼)[1720~1783]가 상하면 검산리에 그의 5대조의 사당인 감모재(感慕齋)를 세우고, 그곳에 스무...

  • 감모재(感慕齋)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검산리 상라대에 있는 조선 후기 김도의가 세운 재실. 감모재는 조상을 사모하는 의미에서 지어진 전사청(典祠廳)의 건물로, 전국의 여러 곳에 설립되어 있다. 고창군의 감모재는 김도의(金道誼)[1720~1783]가 세운 것이다. 김도의는 조선 후기 유학자로 자는 의성(義成), 호는 여우정(如愚亭)이며, 본관은 청도다.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검산면 하라대에서 출...

  • 감천(感泉)오준(吳浚)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조선 전기 고창 출신의 효자. 본관은 동복(同福). 호는 감천(感泉). 한림원승지를 역임한 오자귀(吳自貴)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를 역임한 오팽년(吳彭年)이다. 오준(吳浚)은 어린 시절부터 학문을 깊이 연구하고 예절을 숭상하며 효성이 지극하였다. 28세 때인 1471년(성종 2) 어머니가 병환으로 위독하자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마시게 하여 3~4일을 연명케 하였다. 그...

  • 갑오난동학농민혁명(東學農民革命)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개항기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 지역에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심하여 일으킨 봉기. 손화중포(孫化中包)를 중심으로 한 고창 지역의 동학농민혁명은 사회적·경제적 불평등과 수탈에 맞서 일어난 각 지역 민란이 전국적인 항쟁으로 옮아 갈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동학농민혁명은 실패하였지만 동학농민혁명군이 제시한 폐정 개혁안은 갑오개혁에 일부분 반영되었으며, 동학농민혁명군들 중 일부는 국권피탈...

  • 갑운(甲雲)백인수(白麟洙)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수원(水原)이고, 자는 사순(泗淳), 호는 갑운(甲雲)이다. 1856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덕산리에서 백우진(白宇鎭)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백인수는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하고 올곧은 성품을 지녔다고 한다. 1905년 10월 5일 을사조약을 결사반대하며 백성기(白性基)와 함께 국권 회복 운동을 전개하였다. 1910년 8월 29일 합방의...

  • 갑향가평리(加平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가평리는 고려 때 갑향(甲鄕)이 있어 갑향이라 하다가 ‘가평(加平)’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뚜렷한 기록은 확인할 수 없으나, 고려 시대에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본래 흥덕군(興德郡) 일남면(一南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가평리(加平里)·백계동(白溪洞)·갈촌(葛村)·노동(蘆洞)과 이남면(二南面)...

  • 갑향원(甲鄕院)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고려 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일대에 설치되었던 숙박 시설. 원(院)이 언제부터 설치·운영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삼국 시대부터 우역(郵驛)을 설치하고 사신의 왕래처에 관(館)을 두었던 점으로 미루어 삼국 시대부터 설치되었다고 여겨진다. 원은 공적 임무를 띠고 지방에 파견되는 상인 및 일반 행인에게 편의를 제공하고자 설치된 것이다. 역과 함께 설치된...

  • 갓당산진서화표 석주(鎭西華表石柱)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에 있는 조선 후기 풍수 비보 입석. 화표(華表)는 중국에서 풍수비보 기능을 하는 석주로서 사원 내에 조성된다. 진서화표 석주[지정 명칭 하거리 할아버지당]는 1801년(순조 1)에 대홍수를 겪은 고창읍 주민들이 재난을 방지하고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기 위하여 주민들이 합심하여 1803년(순조 3)에 조성한 것이다. 문화재청 지정 명칭은 하거리 할...

  • 강경중(姜敬重)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무장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로 생년월일은 알 수 없다. 동학 농민 혁명 당시손화중포의 접주로서 보은집회와 3월 봉기 및 9월 봉기에 참여하였다. 우금치 전투 때 전사하였다. 강경중의 생년월일은 알 수 없으나,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언제 동학에 입교(入敎)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 강남리(江南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 속하는 법정리. 강남리는 마을에 감나무가 많아서 감남기·감낭기·감냉기 또는 시목리라 하다가 음이 변하여 강남(江南)이 되었다. 조선 말기 무장군 탁곡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강남·장두(獐頭)·낙양(洛陽)·덕산(德山) 등을 병합하여 강남리라 하고 고창군 석곡면에 편입하였고, 1935년 3월 1일 도령 제1호에...

  • 강대선(姜大宣)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7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강훈이다. 강대선은 1919년 5월 고창군의 신창학교에서 군자금 모집을 위해 서울에서 내려온 대한독립애국단 단원 김영식(金永植)에게 군자금을 수합해야 하는 취지를 듣고, 동향의 부호 강대직(姜大直)을 상대로 자금 수합 활동을 펴는 한편, 같은 해 8월에 서울로 올라가 정식으로...

  • 강대식(姜大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고창 출신의 관리, 교육자, 사회사업가. 본관은 진주(晋州)이다. 1878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서 태어났다. 강대식은 1903년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을 지냈으며, 1905년에는 6품 승훈랑(承訓郞), 정3품 비서감(秘書監)으로 승차하였다. 한일합방 후 지금의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로 물러난 뒤 재산을 일구어 소작인을 1,057명이나 거느릴 정도의 대...

  • 강대식 고택(姜大湜古宅)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에 있는 강대식이 살았던 조선 시대 고가. 승지(承旨)를 지냈던 강대식의 옛집으로 전통 가옥의 건축미를 살펴볼 수 있다. 성송면 암치리에는 기와를 얹은 옛날 대문이 제법 보인다. 그중에서 비석 옆에 있는 가장 큰 대문이 있는 집이 강대식 고택이다. 강대식 고택 뒷집 후원에는 1989년에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30호로 지정된 수사공 강응환 가전유물이 있...

  • 강대영(姜大榮)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강대영은 1875년 5월 13일 전라북도 흥덕 부안 검곡[현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검산리]에서 태어났다. 1909년 2월 15일 김영백(金永伯) 의병장으로부터 130여 명의 의병과 총기 70여 정 및 도검 5자루를 인계받아 의진(義陣)을 편성하였다. 이후 의병장으로서 고창의 반등산, 흥덕의 수강산 등지에서 군사들을 훈련시킨 후 진군하던 중 체포되어 1...

  • 강대직(姜大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호는 이온재(而溫齋)이다. 강희맹(姜希孟)의 후손으로, 경상좌수사를 역임한 물기재(勿欺齋) 강응환(姜膺煥)의 6세손이다. 1886년(고종 23)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에서 태어났다. 강대직은 1914년 독립의군부 종사관의 칙지(勅旨)를 받고, 이때부터 비밀 결사 독립운동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주로 상해...

  • 강대홍(姜大洪)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고창농악 고깔 소고춤 명인. 강대홍은 1926년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양사리[현 성송면 하고리]에서 태어났다. 강대길, 강대북, 강대성과 형제인데, 강대홍을 포함한 이들 4형제가 어떤 사람이 와도 당해 내지 못할 만큼 고깔소고춤을 잘 추었다고 한다. 1990년에 정리한 고창농악단 명단에 수소구 유만종, 부소구 이승규에 이어 삼소구 강대홍의 이름이 나온다....

  • 강릉김씨(江陵金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김주원을 시조로 하고 김전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강릉김씨(江陵金氏)의 시조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金周元)은 무열왕(武烈王)의 5대손으로 785년 선덕왕(宣德王)이 죽고 후사가 없자 군신회의에서 왕으로 추대되었으나 입궐을 사양하고 강릉으로 낙향하였다. 원성왕(元聖王)은 김주원을 명주군왕으로 봉하고 명주·익령(翼嶺)·평해(平海) 세 고을을 식읍으로 내려...

  • 강릉김씨(江陵金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김주원을 시조로 하고 김전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강릉김씨(江陵金氏)의 시조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金周元)은 무열왕(武烈王)의 5대손으로 785년 선덕왕(宣德王)이 죽고 후사가 없자 군신회의에서 왕으로 추대되었으나 입궐을 사양하고 강릉으로 낙향하였다. 원성왕(元聖王)은 김주원을 명주군왕으로 봉하고 명주·익령(翼嶺)·평해(平海) 세 고을을 식읍으로 내려...

  • 강만저(姜萬著)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개숙(皆叔), 호는 치재(癡齋). 사평(司評) 강학손(姜鶴孫)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강계오(姜繼吳)이고, 할아버지는 강시언(姜時彦)이다. 아버지는 송암(松庵) 강필주(姜弼周)이며, 어머니는 황주변씨(黃州邊氏)로 변태(邊泰)의 딸이다. 모산(茅山) 강민저(姜敏著)가 형이다. 강만저(姜萬著)는 1655년(효종 6...

  • 강모질이모질(李-)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고깔 소고춤 명인. 고창군 성송면 출신으로, 본명은 이모조이다. 1900년 초반 세습 무계(巫系) 집안에서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이름을 강모질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 마을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모질이 확실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창 지역에서 가장 이름 난 고깔 소고잽이로 고창농악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모질은 소고...

  • 강민저(姜敏著)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내숙(來叔), 호는 모산(茅山). 강희맹(姜希孟)의 8세손으로, 증조할아버지 강계오(姜繼吳)가 전라남도 영광에서 세거하다 처가[진주정씨(晉州鄭氏)]와 외가[무송유씨(茂松庾氏)]가 있는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에 정착하였다. 아버지는 강필주(姜弼周)이다. 강민저(姜敏著)는 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의 문하에서...

  • 강수원(姜壽元)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상갑리 353번지[갑평1길 75]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강항천(姜恒泉)이고 호는 늘샘이다. 강수원은 1939년 3월에 일본으로 건너가 고학으로 1941년 12월에 전수대학(專修大學)을 졸업하였다. 1940년 11월에 동경 유학생인 임병학(林炳學)·강영석(姜永錫) 등과 함께 조선대학동아연...

  • 강순(姜恂)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고창 지역에 낙향한 유학자.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신백(信伯), 호는 청계(淸溪). 대제학을 지낸 진산부원군 강계용(姜啓庸)의 13세손으로, 파조 통계공(通溪公) 강회중(姜淮仲)의 7세손이다. 강순(姜恂)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동지들 및 집안사람 100여 명을 이끌고 의병을 일으켰다. 이후 남한산성으로 진격하던 중 강화(講和)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통분을 이기...

  • 강시언(姜時彦)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효자.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백영(伯英), 호는 하월당(荷月堂)·호은(湖隱). 문량공(文良公) 강희맹(姜希孟)의 6세손으로, 아버지는 강계판관을 지낸 강계오(姜繼吳)이다. 강시언(姜時彦)은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도와 형제에 대한 우애가 깊었다. 항상 의리에 맞는 행동을 하고 문장과 기절(氣節)이 뛰어나 주위의 추앙을 받았다. 이괄(李适)의...

  • 강영문(姜永文)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1881년 2월 20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도림리 281번지[왕림1길 64]에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강익문(姜益文)이다. 강영문은 1913년 9월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를 조직한 임병찬(林秉瓚)·이인순(李寅淳) 등이 서울에 중앙순무총장(中央巡撫總將)을 두고 전국 각 도·군에 산하 조직을 설치하여 국권 회복 운동을 벌이자 참가하여...

  • 강응환(姜膺煥)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무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명서(名瑞), 호는 물기재(勿欺齋). 1447년(세종 29) 문과에 급제하여 세종에서 세조 조에 이르기까지의 명신으로 이름난 강희맹(姜希孟)의 11세손이다. 강희맹의 둘째 아들 강학손(姜鶴孫)의 여섯째 아들 강흔수(姜欣壽)가 강응환(姜膺煥)의 9대조인데, 그의 6대조 강계오(姜繼吳)가 전라남도 영광에서 외가인 무송유씨(茂松庾...

  • 강익문(姜益文)강영문(姜永文)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1881년 2월 20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도림리 281번지[왕림1길 64]에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강익문(姜益文)이다. 강영문은 1913년 9월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를 조직한 임병찬(林秉瓚)·이인순(李寅淳) 등이 서울에 중앙순무총장(中央巡撫總將)을 두고 전국 각 도·군에 산하 조직을 설치하여 국권 회복 운동을 벌이자 참가하여...

  • 강재(剛齋)오장환(吳壯煥)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함양(咸陽)이며, 자는 응천(應天), 호는 강재(剛齋), 이명(異名)은 경환(京煥)·길환(吉煥)이다. 1863년 11월 12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남산리 479번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오시만(吳時晩)이다. 오장환은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이 자행되자 기삼연(奇參衍)·전해산(全海山) 등과 전라도 장성·고창·영광에서 의...

  • 강종서(姜宗瑞)강종회(姜鍾會)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1851년 3월 1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도림리 150번지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강종팔(姜鍾八) 혹은 강종서(姜宗瑞)이다. 강종회는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경복궁위장(景福宮衛將)을 역임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1906년 4월 최익현(崔益鉉)이 전라북도 정읍의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기병(起兵)하자 김...

  • 강종팔(姜鍾八)강종회(姜鍾會)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1851년 3월 1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도림리 150번지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강종팔(姜鍾八) 혹은 강종서(姜宗瑞)이다. 강종회는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경복궁위장(景福宮衛將)을 역임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1906년 4월 최익현(崔益鉉)이 전라북도 정읍의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기병(起兵)하자 김...

  • 강종회(姜鍾會)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1851년 3월 1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도림리 150번지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강종팔(姜鍾八) 혹은 강종서(姜宗瑞)이다. 강종회는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경복궁위장(景福宮衛將)을 역임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1906년 4월 최익현(崔益鉉)이 전라북도 정읍의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기병(起兵)하자 김...

  • 강천수(姜天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중민(仲民), 호는 거산(巨山)이다. 1863년 지금의 전라남도 장성군 서삼면 장산리에서 태어났다. 강희맹(姜希孟)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춘파(春坡) 강인회(姜寅會)이다. 1832년 강인회가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 들어가면서 장성으로 이거하였다. 강천수(姜天秀)는 할아버지 강인회의 권유...

  • 강필주(姜弼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고창 지역에 낙향한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대로(大老), 호는 송암(松庵). 강희맹(姜希孟)의 7세손이다. 할아버지는 진주강씨 고창 입향조인 강계오(姜繼吳)이고, 아버지는 병자호란에 의병으로 참여했던 강시언(姜時彦)이다 강필주(姜弼周)는 1621년(광해군 13) 할아버지 강계오가 연산군 때의 혼탁한 세상을 피해 남하, 은거한 영광 땅에서 태어났다. 이후 5세...

  • 강항천(姜恒泉)강수원(姜壽元)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상갑리 353번지[갑평1길 75]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강항천(姜恒泉)이고 호는 늘샘이다. 강수원은 1939년 3월에 일본으로 건너가 고학으로 1941년 12월에 전수대학(專修大學)을 졸업하였다. 1940년 11월에 동경 유학생인 임병학(林炳學)·강영석(姜永錫) 등과 함께 조선대학동아연...

  • 강호항공고등학교(江湖航空高等學校)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덕산리에 있는 사립 고등학교. 30년의 역사를 가진 신흥 명문 사학으로서 21세기의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점진적이며 자발적인 교육 개선과 책임 있고 내실 있는 교육 경영으로 ‘잘 사는 인간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교훈은 강인(强忍), 성근(誠勤), 심미(審美), 창조(創造)이다. 1979년 3월 21일 학교법인 강호학원을 설립하...

  • 강후진(康候晋)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전라북도 고창 출신의 실학자. 강후진(康候晋)은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 이재(頥齋) 황윤석(黃胤錫) 등과 더불어 호남 실학자로 평가된다. 한국의 상고사를 비롯하여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특이한 관점과 식견을 지녔으며, 문헌을 널리 읽고 유적을 답사하여 확인하고 기록한 대표적인 실학자이다. 본관은 신천(信川). 자는 자순(子順)·순보(順甫), 호는 태평산인(太平散人)...

  • 강훈강대선(姜大宣)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1897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강훈이다. 강대선은 1919년 5월 고창군의 신창학교에서 군자금 모집을 위해 서울에서 내려온 대한독립애국단 단원 김영식(金永植)에게 군자금을 수합해야 하는 취지를 듣고, 동향의 부호 강대직(姜大直)을 상대로 자금 수합 활동을 펴는 한편, 같은 해 8월에 서울로 올라가 정식으로...

  • 강흔(康訢)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신천(信川). 자는 구부(懼夫), 호는 장봉(莊峰). 전라남도 영광에 정착한 강유(康旒)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강응성(康應星)이다. 강흔(康訢)은 4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16세 때 어머니를 여의었다. 이후 성장하여 상례와 여묘(廬墓)를 다시 갖추는 효행을 지켜 냈다. 학덕이 높은 수은(睡隱) 강항(姜沆)과 사귀면서 널리 배우고...

  • 개숙(皆叔)강만저(姜萬著)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개숙(皆叔), 호는 치재(癡齋). 사평(司評) 강학손(姜鶴孫)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강계오(姜繼吳)이고, 할아버지는 강시언(姜時彦)이다. 아버지는 송암(松庵) 강필주(姜弼周)이며, 어머니는 황주변씨(黃州邊氏)로 변태(邊泰)의 딸이다. 모산(茅山) 강민저(姜敏著)가 형이다. 강만저(姜萬著)는 1655년(효종 6...

  • 개신교(改新敎)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활동하는 그리스도교의 한 분파. 개신교는 종교개혁의 결과로 로마 가톨릭에서 분리되었으며 로마 가톨릭, 동방정교[그리스정교]와 더불어 기독교 3대 교파 중 하나가 되었다. 전 세계에는 루터교(Lutheran), 개혁교회(Reformed Church), 장로교(Presbyterian), 성공회(Anglican), 침례교(Baptist), 감리교(Methodist),...

  • 개연가시연꽃(-蓮-)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하장리의 석남저수지[용대저수지]에서 서식하고 있는 쌍떡잎식물 미나리아재비목 수련과의 한해살이풀. 가시연꽃은 멸종 위기 식물 Ⅱ급으로 분류된다. 전라북도에는 약 2,200개의 저수지가 있는데, 석남저수지[용대저수지] 외에도 가시연꽃이 서식하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온다. 그러나 저수지를 관리하고 있는 한국농어촌공사나 시·군에는 가시연꽃 분포 현황에 대한 자료가 없...

  • 객귀물림잔밥맥이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초상난 곳 등의 궂은 장소에 다녀온 뒤 아팠을 때 행하는 치병 의례. 잔밥맥이기는 발병의 원인이 객귀의 한 종류인 ‘잔밥각시’의 소행으로 의심될 때 거행하는 주술적인 치병 의식이다. 이를 ‘객귀물림’이라고도 한다. 가족 중에서 초상이나 혼례 등 사람이 많은 부정한 곳에 다녀온 뒤 특별한 까닭 없이 몸이 아플 경우, 아픈 사람을 낫게 하려고 단골을 불러다 잔밥...

  • 거무실주곡리(蛛谷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주곡리는 풍수지리상 지형이 거미 형국이라하여 ‘거미(무)실’ 또는 ‘거미[蛛]’를 써 ‘주곡(蛛谷)’이라 하였다고 한다. 1562년 고흥유씨(高興柳氏) 석탄(石灘) 유운(柳澐)이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오동면(五東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상평리(上坪里)·...

  • 거산(巨山)강천수(姜天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유학자.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중민(仲民), 호는 거산(巨山)이다. 1863년 지금의 전라남도 장성군 서삼면 장산리에서 태어났다. 강희맹(姜希孟)의 후손으로, 할아버지는 춘파(春坡) 강인회(姜寅會)이다. 1832년 강인회가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 들어가면서 장성으로 이거하였다. 강천수(姜天秀)는 할아버지 강인회의 권유...

  • 거창신씨(居昌愼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신수를 시조로 하고 신사안·신영석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 세거 성씨. 거창신씨는 고려 시대 좌복야를 지낸 공헌공 신수(愼修)를 시조로 한다. 거창신씨 고창군 입향조인 신사안(愼師安)은 조선 시대 호조판서를 지낸 신기(愼幾)의 둘째 아들 신후갑(愼後甲)의 후손인 송재공 신자건(愼自建)의 9대손으로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에서 태어났다. 1707년(숙종 33) 진사인 숙부 신석삼...

  • 건동리(建洞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 속하는 법정리. 건동리에 관한 뚜렷한 지명 유래는 확인되지 않는다. 1914년 ‘건동(建洞)’과 ‘송산(松山)’을 병합하여 그 중심 마을의 이름을 붙여 건동이라고 했다. 1700년대 중엽 무송유씨(茂松庾氏) 유제한(庾濟漢)이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와공면(瓦孔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

  • 건동리 미륵골 미륵(建洞里彌勒-彌勒)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건동리에 있는 조선 시대 미륵불 입상. 전통 마을의 안팎에 미륵불을 조성한 것을 마을 미륵이라 한다. 마을 미륵은 미륵불이 중생 구제를 위하여 마을로 내려온 방식을 보여주는 미륵불이다. 주민들은 마을의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마을 미륵에게 수시로 기원 의식을 거행한다. 특히 기자(祈子) 신앙의 대상으로 섬기는 마을 미륵이다. 높이 170㎝의 건동리...

  • 건축(建築)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만들어진 건물이나 구조물. 건축은 인간 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쉼터와 안락함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종교 등 다양한 인간 활동을 위한 유용한 공간도 제공한다. 건축의 유형은 일반적으로 주거 건축, 종교 건축, 관청 건축, 휴양 건축, 복지와 교육 건축, 상업과 공업 건축 등으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각 영역별 건축의...

  • 검단선사(黔丹禪師)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선운사를 창건한 백제의 승려. 검단선사(黔丹禪師)는 백제 위덕왕(威德王) 때 활동했던 선사로, 577년(백제 위덕왕 24) 선운사를 창건하였다. 검단선사와 관련한 자세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단지 백제 위덕왕 때 인적이 끊긴 심산유곡의 동굴에서 홀로 초근목피와 흐르는 계곡 물로 허기를 달래며 수도에 정진하는 마흔 후반의 도승이 있다고 해서 사람들이 그의 검은 얼굴을 빗대어...

  • 검당포(黔堂浦)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조선 시대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 월산리 검당마을에 있었던 해상 포구. 검당포(黔堂浦)는 조선 시대에 농도가 진한 소금물[염탕수]을 큰 솥에 넣고 불을 지펴 다려 만드는 화염의 생산지로 유명하다. 검당포의 지명 유래는 두 가지가 있는데 선운사를 창건한 검당선사 또는 화염을 굽는 벌막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검당]와 관련된다는 설이 있다. 전언에 의하면 1400여 년 전 검당선사가 선...

  • 검산리 창내토성 터(劍山里倉內土城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검산리에 있는 조선 시대 토성 터. 창내토성에 대한 문헌 자료나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다만 창내토성으로 볼 수 있는 기록으로는 『대동지지(大東地志)』 권11에 나타나는 “오태성 서쪽 15리(吳泰城西十五里)”라는 기록을 들 수 있는데, 이는 흥덕읍성에서 서쪽으로 약 5㎞ 떨어진 창내토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창내마을 뒤쪽인 북측 야산에 위치하는데...

  • 검산리 창내토성 터(劍山里倉內土城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검산리에 있는 조선 시대 토성 터. 창내토성에 대한 문헌 자료나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다만 창내토성으로 볼 수 있는 기록으로는 『대동지지(大東地志)』 권11에 나타나는 “오태성 서쪽 15리(吳泰城西十五里)”라는 기록을 들 수 있는데, 이는 흥덕읍성에서 서쪽으로 약 5㎞ 떨어진 창내토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창내마을 뒤쪽인 북측 야산에 위치하는데...

  • 검산리[부안면](劍山里[富安面])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에 속하는 법정리. 검산리는 검곡(檢谷, 劍谷)의 ‘검’자와 중산(中山)의 ‘산’자를 따서 검산(劍山)이라 하였다. 조선 말기 흥덕군 부안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팽정(彭丁)·창내(倉內)·중산·장등(長嶝)·검곡·부귀(富貴), 이서면 신안(新安) 등을 병합하여 검산리라 하고 부안면에 편입하였다. 중매[일명 중산]...

  • 검산리[상하면](劍山里[上下面])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에 속하는 법정리. 검산리는 마을 뒤에 장군봉이 있는데, 마을 형국이 장군이 쓰는 ‘칼[長劍]’ 모양이라 ‘검산(劍山)’이라고 하였다 한다. 1584년 청도김씨(淸道金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상리면(上里面)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 상라리(上羅里)·상수리(上水里)와...

  • 검암월암리(月岩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월암리는 달밤에 바위 모양을 이루었다고 하여 부르게 된 이름이다. 이전에는 ‘정산(鼎山)’·‘검암(儉岩)’ 등으로도 불렀다고 한다. 조선 전기에 마을 터가 이루어졌다고 하나,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되지 않고, 조선 중기 창녕조씨(昌寧曺氏) 조여흠(曺汝欽)이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천북면(川北面)의 지...

  • 검은머리물떼새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북도 고창군에 서식하는 물떼새과에 속하는 조류. 몸길이는 45㎝, 날개 길이는 23~28㎝ 정도이다. 다른 종과 구별이 뚜렷한 붉은 부리와 핑크빛 다리를 가지고 있다. 암컷과 수컷 여름 깃의 이마와 목은 검은색이고, 눈 밑은 흰색 작은 무늬가 있다. 눈꺼풀은 붉은 오렌지색이다. 어깨깃 윗등은 검은색이고 윗가슴에는 검은색 띠가 있는데 목의 검은색 부분과 이어져 있다. 아랫등, 허...

  • 검정딸기복분자딸기(覆盆子-)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서식하고 있는 쌍떡잎식물 장미목 장미과의 낙엽 활엽 관목. 고창군 선운사 일대에서 1998년 기준 180여 농가가 23만 5000㎡를 재배하였으며, 매년 재배 면적이 증가하여 2009년에는 4,650여 농가의 약 15㎢에서 5000여 톤을 생산하여 1500억 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최근에는 고창군 이외에도 정읍시, 순창군, 강원도 횡성군 등 여러 지역에서 복...

  • 게내갈곡천(葛谷川)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방장산에서 발원하여 부안면 중흥리에서 서해로 흘러드는 하천. 신림면 가평리 방장산 북쪽 갈촌(葛村)에서 발원하여 세곡(細谷)까지의 각 골짜기의 물을 합류시키기 때문에 갈곡천으로 불리고 있다. 갈곡천은 해천(蟹川), 혹은 ‘게내’라고도 하였다. 곰소만[줄포만]으로 직접 유입되는 해안과 인접한 하천으로 하상이 점토 및 실트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잡초와 수...

  • 경당(敬堂)유상준(柳相浚)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개항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고흥(高興)이며, 자는 백명(伯明), 호는 경당(敬堂)이다. 아버지는 계은(溪隱) 유낙연(柳樂淵)이다. 1853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봉산리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유진룡(柳鎭龍)이 전라남도 영광군 불갑면에서 살다가 봉산리로 이거했다고 전한다. 유상준(柳相浚)은 타고난 성품이 순박하고 인정이 많으며 효성이 지극했다고 한다. 여섯 살 때...

  • 경덕(敬德)김수형(金秀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개항기 고창 출신의 문신. 본관은 청도(淸道)이며, 자는 경덕(敬德), 호는 하석(霞石)이다. 1840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검산리에서 태어났다. 청도김씨 고창 입향조 김여의(金麗義)의 14세손이다. 김수형(金秀馨)은 1877년(고종 14)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로 임명되었다. 이후 성균관전적, 사간원정언을 거쳐 헌납 직에 오르고, 사헌부장령과 지평을 지내던 중 어...

  • 경래(慶來)박도경(朴道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화옥(化玉), 호는 경화(京和), 이명(異名)은 경래(慶來)이다. 도경(道京)은 아명이다. 1874년 3월 23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 307번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박준식(朴準植)이다. 박도경은 한미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부터 언변과 기개가 뛰어났다고 한다. 1905년 을시조약이 체결되자 고창 문...

  • 경모사(景慕祠)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 월산리에 있는 손기락을 기리는 일제 강점기 사당. 경모사는 손긍훈(孫兢訓)과 조선 후기 학자인 손기락(孫基洛)을 기리는 사당이다. 손긍훈은 임진왜란 때 활약한 의사(義士)로 본관은 밀양이다. 임진왜란 때 화산(火山)에서 왜적을 대파한 공적이 있었고, 병자호란 때에는 부사 이필달(李必達)이 충주 달천에서 전몰하는 꿈을 꾸어 이를 예견하였다고 한다. 손기락은 조...

  • 경모사(景慕祠)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 월산리에 있는 손기락을 기리는 일제 강점기 사당. 경모사는 손긍훈(孫兢訓)과 조선 후기 학자인 손기락(孫基洛)을 기리는 사당이다. 손긍훈은 임진왜란 때 활약한 의사(義士)로 본관은 밀양이다. 임진왜란 때 화산(火山)에서 왜적을 대파한 공적이 있었고, 병자호란 때에는 부사 이필달(李必達)이 충주 달천에서 전몰하는 꿈을 꾸어 이를 예견하였다고 한다. 손기락은 조...

  • 경방(京坊)신월리(新月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 속하는 법정리. 신월리는 마을 형국이 ‘달’처럼 생겼다고 하여 ‘신월’이라 부르고 있다. 애초에 ‘경방(京坊)’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고려 중기에 고창오씨(高敞吳氏)의 시조 오학린(吳學麟)이 말년에 내려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고창군 산내면(山內面)의 지역으로, 1914년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신흥리(新興里)·...

  • 경삼(敬三)김기풍(金箕豊)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와 개항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경삼(敬三), 호는 죽강(竹岡)이다. 1835년(헌종 1)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태어났다. 양간공(良簡公) 김연(金璉)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김태윤(金泰潤)이다. 1854년 청도김씨와 결혼하였으며, 큰아들이 김재헌이다. 김기풍(金箕豊)은 5세 때부터 글을 배웠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글을...

  • 경석(京石)차경석(車京石)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고창 출신의 보천교 교주. 본관은 연안(延安). 본명은 차윤홍(車輪洪), 자는 경석(京石), 호는 차월곡(車月谷)·차천자(車天子). 아버지는 동학 접주 차치구(車致九)[1851~1894]이고, 어머니는 밀양 박씨(密陽 朴氏)이다. 4남 1녀 중 큰아들이다. 슬하에 3남 5녀를 두었다. 구례 화엄사와 고창 선운사 등을 지킨 차일혁 경무관이 차경석(車京石)[188...

  • 경수봉경수산(鏡水山)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와 심원면 월산리에 걸쳐 있는 선운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경수산에서 바라보는 곰소만[줄포만]의 바닷물과 주진천[인천강]의 물이 거울같이 맑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지리산은 전체를 지칭할 때는 지리산이라 하고, 그 산에 소속된 모든 봉우리들은 산으로 부르지 않고, 주봉은 천왕봉, 제2봉은 반야봉·중봉·하봉·바래봉·제석봉 등으로 부른다. 하지만 선운...

  • 경수산(鏡水山)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와 심원면 월산리에 걸쳐 있는 선운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 경수산에서 바라보는 곰소만[줄포만]의 바닷물과 주진천[인천강]의 물이 거울같이 맑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지리산은 전체를 지칭할 때는 지리산이라 하고, 그 산에 소속된 모든 봉우리들은 산으로 부르지 않고, 주봉은 천왕봉, 제2봉은 반야봉·중봉·하봉·바래봉·제석봉 등으로 부른다. 하지만 선운...

  • 경안(敬安)오자환(吳滋煥)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교육가이자 사회사업가. 본관은 함양(咸陽)이며, 자는 경안(敬安), 호는 남사(南沙)이다. 1895년 1월 13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남산리 흥룡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오병문(吳秉文)[1858~1915]으로 부호였다. 오자환(吳滋煥)은 다른 아이들이 한문 서당에 다니고 있을 때 신학문을 배웠다. 성장한 뒤 그는 식민지 치하에서 가장 시급한...

  • 경안교회(-敎會)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의 교회. 경안교회는 ‘충성하는 사명자가 되자’를 표어로, 말씀 충만한 교회, 성령 충만한 교회, 은혜 충만한 교회, 능력 충만한 교회를 지향하는 교회이다. 기독교 복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파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83년 진영수 목사에 의해 설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매주 일요일 오전 11시 주일 낮 예배...

  • 경암(敬菴)김노수(金魯洙)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개항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울산(蔚山)이다. 일명 김명수(金明洙)이고 자는 광언(光彦)이며 호는 경암(敬菴)이다.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의 후손이고 김전중(金田中)의 아들이다. 1878년(고종 15)에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筆巖里)에서 출생하여 7세 때 아버지를 따라 고수면 황산리 평촌(平村)마을로 들어왔다. 45세 때 고수면 예지리(禮智里)로 이거하고, 74세 때...

  • 경옥(景玉)황수경(黃秀瓊)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평해(平海). 자는 경옥(景玉), 호는 단옹(檀翁). 증조할아버지는 산촌(山邨) 황재만(黃載萬)이고, 할아버지는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이며, 아버지는 수촌 황일한이다. 황수경(黃秀瓊)은 안촌(安村) 황이후(黃以厚), 구암(龜巖) 황재중(黃載重), 만은(晩隱) 황전(黃廛), 이재 황윤석 등 누대에 걸쳐 이어 오는 문벌 가정에서 출생하여,...

  • 경일(景一)신현중(申鉉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평산(平山)이다. 1877년(고종 14)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에서 태어났다. 관수당(觀水堂) 신담(申淡)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오정(梧汀) 신도균(申燾均)이다. 신현중(申鉉中)은 아버지 밑에서 글을 배우다가 기우만(奇宇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경전과 사서(四書),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책을 읽고 정주(程朱)의 성리학에...

  • 경제산업(經濟産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재화·용역의 생산·분배·소비와 관련되는 활동 전반과 영역. 고창군은 전주와 광주의 중간 지점인 전라북도 서남부에 위치하며, 호남 서해안 지방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이지만 생활권이 전주시, 정읍시 및 광주광역시 권으로 분산되어 그 중심성이 약화되는 한계를 갖고 있다. 전체적으로 비교적 완만한 평야지로 이루어져 있어 전통적인 농업 지역이지만, 군의...

  • 경주김씨(慶州金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김알지를 시조로 하고 김윤해를 입향시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세거 성씨. 파조인 수은공(樹隱公) 김충한(金沖漢)의 현손 김윤해(金潤海)가 연산군 대에 사회가 혼란스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남원으로 내려왔다가 고창군 대산면 매산리 세장마을로 입향하였다. 파조의 7대손으로 당시 전라북도 남원군 송동면 만골마을에서 태어난 김영량(金榮亮)[1650~1712]이 1692년(숙종 18) 성...

  • 경주이씨(慶州李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이알평을 시조로 하고 이이곤·이석의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 세거 성씨. 경주이씨는 표암공(瓢巖公) 알평(謁平)을 시조로 한다. 알평은 초기 신라의 6촌 중 알천양산촌 촌장으로 신라개국원훈(新羅開國元勳)으로서 벼슬이 아찬(阿湌)에 이르렀다. 이씨(李氏)로 사성(賜姓)되어 경주이씨의 시조가 되었다. 경주이씨 고창군 입향조인 이이곤(李以坤)은 파조 문충공(文忠公) 이익재(李益齋...

  • 경주정씨(慶州鄭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지백호를 시조로 하고 정정숙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 세거 성씨. 경주정씨는 『삼국유사』 기이 신라 시조 혁거세왕조에 나오는 신라 6촌장의 한 사람인 낙랑후(樂浪侯) 지백호(智伯虎)를 시조로 하고, 시림군(始林君) 정연(鄭年)을 중시조로 한다. 경주정씨 고창군 입향조 정정숙(鄭貞淑)은 충장공(忠壯公) 정발(鄭撥)의 5대손으로 1696년(숙종 22) 경기도 양주시 마전동(麻田...

  • 경주최씨(慶州崔氏)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최치원을 시조로 하고 최구·최응시·최문회·최문세·최기순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고창군 세거 성씨. 경주최씨는 문창후(文昌侯) 최치원(崔致遠)을 시조로 한다. 고창군의 경주최씨는 충렬공파(忠烈公派), 문밀공파(文密公派)가 알려져 있다. 경주최씨 고창군 입향조 최구(崔嶇)는 충렬공 최광위(崔光位)의 15대손으로 1570년(선조 3) 전라남도 장성에서 최홍립(崔弘立)의 둘째 아들로 태...

  • 경헌(景憲)김기남(金起南)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의숙(義叔)·경헌(景憲), 호는 송계(松溪). 판도판서공파(判圖判書公派)[일명 삼현파(三賢派)])의 파조 김관(金管)의 10세손으로, 아버지는 김축(金軸)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당시 80세였던 김여성(金汝聲)의 아버지 김축이 “장남은 종손이므로 노모를 모시고 집안 가솔들을 돌보라.”고 당부하고 두...

  • 경화(京和)박도경(朴道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화옥(化玉), 호는 경화(京和), 이명(異名)은 경래(慶來)이다. 도경(道京)은 아명이다. 1874년 3월 23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 307번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박준식(朴準植)이다. 박도경은 한미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부터 언변과 기개가 뛰어났다고 한다. 1905년 을시조약이 체결되자 고창 문...

  • 경화(敬化)박학동(朴鶴東)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자는 경화(敬化), 호는 송파(松坡)이다. 1844년(헌종 10)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서 태어났다. 참판 박숙선(朴叔善)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박해헌(朴海憲)이다. 박학동(朴鶴東)은 어려서부터 마을 서당에서 공부하여 어린 나이에 학행(學行)이 드러났다. 30세 때인 1873년(고종 10) 장성에 가서 기...

  • 경환(京煥)오장환(吳壯煥)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함양(咸陽)이며, 자는 응천(應天), 호는 강재(剛齋), 이명(異名)은 경환(京煥)·길환(吉煥)이다. 1863년 11월 12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남산리 479번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오시만(吳時晩)이다. 오장환은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이 자행되자 기삼연(奇參衍)·전해산(全海山) 등과 전라도 장성·고창·영광에서 의...

  • 경희(景羲)노진룡(魯鎭龍)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함평(咸平)이며, 자는 경희(景羲), 호는 성재(誠齋)이다. 1894년 11월 6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대흥리 31번지에서 태어났다. 노진룡은 1920년 상해임시정부 산하의 전라북도 감독부를 조직하여 총지휘 감독이 되었다. 당시 감독부에는 부감독 오의균(吳毅均), 재무 황종관(黃鍾寬)·이휴열(李休烈), 고문 강대직(姜大直)·이...

  • 계곡(溪谷)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 지역의 지표에 깊고 길게 파인 골짜기. 계곡은 너비보다 길이가 길며, 침식 영력, 암석의 성질, 침식과 윤회의 시기에 의해 종류를 나눌 수 있다. 성인에 따라 나누면 침식곡과 구조곡으로 구분된다. 침식곡은 하천이나 빙하에 의한 영향으로 생기며, 구조곡은 단층이나 습곡의 영향으로 생긴다. 고창 지역의 대표적인 계곡은 방장산-벽오봉[방문산]-문수산으로 이어지는 영산기맥의...

  • 계당리(溪堂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 속하는 법정리. 계당리는 마을 앞을 흐르는 시내의 지형이 용이 잠긴 형국이라 ‘용계(龍溪)’로 불렸다. 진주정씨(晉州鄭氏) 정회찬(鄭悔燦)이 이주한 뒤 호를 따 ‘계당(溪堂)’이라고 불렀다. 형성 시기는 뚜렷하지 않으나, 고려 말 신천강씨(信川康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또한, 조선 중기 진주정씨 정회찬이 괴치마을에서 옮겨...

  • 계당리 고인돌군(溪堂里-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계당리 일원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군. 고창군 성송면 계당리 일원에는 모두 4개소의 고인돌군이 위치하고 있다. A군 고인돌 2기, B군 고인돌 1기, C군 고인돌 4기, D군 고인돌 7기로 모두 14기이다. 대부분 기반식 고인돌이며 덮개돌이 비교적 판석형에 가까운 평평한 돌을 사용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B군 고인돌과 D군 1기의 고인돌이 대표적이다....

  • 계문(季文)고예진(高禮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계문(季文), 호는 송천(松川)이다. 1875년 11월 24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고시필(高時必)이다. 고예진은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된 뒤 형제들인 고용진(高龍鎭), 고석진(高石鎭)이 최익현(崔益鉉)과 거사할 것을 계획하자 가담하였다. 1906년...

  • 계산리(鷄山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계산리는 풍수지리상 마을 남쪽에 있는 산이 금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므로 계산(鷄山)이라 하였다. 임진왜란 때 광산김씨가 피난하여 정착하면서 마을을 형성하였다. 조선 말기에는 고창군 산내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지산(芝山)·부정(釜鼎)·비석·사신·병암·내독 일부를 병합하여 계산리라 하고...

  • 계산리 고인돌(鷄山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계산리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계산리 고인돌은 논 가운데 단독으로 있다. 초대형의 덮개돌 아래에 받침돌들이 묻혀 있었다. 주위에도 3기의 고인돌 덮개돌로 추정되는 석재들이 확인되었지만 조사 결과 원래의 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고인돌은 대체적으로 군집을 이루며 분포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계산리 고인돌과 같이 단독으로 위치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 계산서원(溪山書院)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검산리에 있는 교육 기관. 고창에서 지방도 703호선을 따라 해리면을 거쳐 상하면 방향으로 약 10㎞ 달리면 검산마을이 나온다. 계산서원은 마을 뒷산에 있다. 계산서원은 1982년에 무장향교 관내 유생들의 공의로 세워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청도김씨(淸道金氏)의 사우로, 본래 1704년(숙종 30) 지방 유림의 공의로 김지대(金之岱)[1190~1266]의 충...

  • 계암(溪庵)조흡(曺潝)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혼부(混夫), 호는 계암(溪庵). 직제학 조서(曺庶)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참봉(參奉) 조인숙(曺仁淑)이다. 조흡(曺潝)은 성품이 단아하고 효성과 우애가 지극했으며 문장이 뛰어났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신유일(辛惟一), 오전(吳晪), 유철견(柳鐵堅)과 함께 의병과 군량을 모집하여 북상하다...

  • 계절음식(季節飮食)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서 계절별로 각기 만들어 먹는 음식. 고창의 계절 음식은 일 년 중 계절별로 먹는 음식으로, 고창 지역도 향토 음식을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타 지역과 대동소이하다. 이를 ‘시절 음식’, ‘절식’ 등이라고도 한다. 계절 음식은 사계절이 뚜렷이 구분되는 우리나라의 전통 음식 문화 중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그때그때 계절에 따라 생산되는 식재료에 따라...

  • 고개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 있는 산이나 언덕을 넘어 다니도록 길이 나 있는 비탈진 곳. 고창군은 산이 낮고 들녘이 많은 지역으로, 고개의 경우 대부분 500m 미만의 작은 고개로 이루어져 있다. 시인 미당(未堂) 서정주(徐貞柱)의 고향으로 시집 『질마재의 신화』의 무대인 질마재, 고창 사람 박의(朴義)가 수원 광교산 전투에 참여하여 적장 양고리(陽古利)를 사살한 것을 기념하여 이름을 붙...

  • 고개미젓세하젓(細蝦-)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북도 고창 구시포에서 나는 가는 새우에 소금을 넣어 담근 젓갈. 세하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전라남도 서해와 남해 청정 바다와 내륙 청정 하천이 만나는 곳에서만 잡히는 바다 새우로 매우 작고 연하며 갓 잡았을 때는 몸체가 아주 투명하다. 젓을 담그면 연하게 숙성된다 하여 ‘가늘 세(細)’자와 ‘새우 하(蝦)’자를 써서 세하젓이라고 한다. 세하젓은 고창 지역에서 4~6월에 어획하여...

  • 고니포(古尼浦)고리포(古里浦)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자룡리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대 관련 포구. 조선 시대 고리포는 봉화를 올렸던 고리포 봉수대가 있었던 포구로 유명하며 봉군들이 머물렀던 마을로 추정된다. 봉수대는 포구 북동쪽 600여m 지점의 안산[120m]의 정상에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고리포의 봉수가 무장현의 서쪽 20리에 있다고 했는데, 이는 구시포의 남서쪽 약 1.8...

  • 고다(古茶)차나무(茶-)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일대에서 서식하고 있는 쌍떡잎식물 측막태좌목 차나무과의 상록 활엽 관목. 차나무는 다수(茶樹), 가다(家茶), 고다(古茶), 작설(雀舌) 등으로도 불렸다. ‘茶’는 다 또는 차라고 발음하는데, 당나라 때까지 다로 쓰이다가 송나라 때에 이르러 차로 변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차라는 말이 구어로 먼저 들어오고, 다는 후에 들어와 자전(字典)의 음이 되었다....

  • 고대(古代)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초기 국가 시대부터 남북국 시대까지의 전라북도 고창 지역의 역사. 고대라는 개념은 서양의 고대·중세·근대의 세 시기로 나눈 시대 구분을 원용한 것이다. 서양사에서 고대 사회의 특징은 주로 생산 관계를 중심으로 한 경제적 관점에서 보는 노예주와 노예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사에서 서양사의 경우와 같은 노예 경제 체제를 인정할 수 없다는 점은 한국사에서 고대 설정을 어렵...

  • 고덕붕(高德鵬)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남익(南翊), 호는 여곡(麗谷). 아버지는 참봉 고응진(高應軫)이다. 고덕붕(高德鵬)은 41세 때인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창의(倡義) 격문을 작성하여 동지를 규합한 뒤 의병장 고경명(高敬命) 진영이 있는 금산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이때 고경명은 이미 순절한 뒤여서 고향으로 돌아와서 채홍국(蔡弘國) 등...

  • 고등학교(高等學校)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에 있는 고등 보통 교육 및 실업 전문 교육 기관. 고등학교는 중학교에서 받은 교육의 기초 위에 고등 보통 교육과 전문 교육을 실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일반적으로 고등학교는 교육 과정에 따라 일반계와 실업계로 구분되나, 일반계와 실업계를 동시에 운영하는 종합 고등학교도 있다. 그 외 특수 목적 고등학교인 과학고등학교, 외국어고등학교, 예술고등학교, 체육고등학교...

  • 고라고라리(古羅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라리는 무장읍내 고을이라 해서 골아래로 불리다가 고내리(古乃里)를 거쳐서 고라리로 칭하였다. 고라실 또는 고라라고 불린다. 조선 말기 무장군 이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안정(安亭)·백양·온금·하거 각 일부, 일동면 원촌 일부, 와공면 송암(松岩)을 병합하여 고라리라 하고 무장면에 편입하였...

  • 고라리(古羅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라리는 무장읍내 고을이라 해서 골아래로 불리다가 고내리(古乃里)를 거쳐서 고라리로 칭하였다. 고라실 또는 고라라고 불린다. 조선 말기 무장군 이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안정(安亭)·백양·온금·하거 각 일부, 일동면 원촌 일부, 와공면 송암(松岩)을 병합하여 고라리라 하고 무장면에 편입하였...

  • 고라실고라리(古羅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라리는 무장읍내 고을이라 해서 골아래로 불리다가 고내리(古乃里)를 거쳐서 고라리로 칭하였다. 고라실 또는 고라라고 불린다. 조선 말기 무장군 이동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안정(安亭)·백양·온금·하거 각 일부, 일동면 원촌 일부, 와공면 송암(松岩)을 병합하여 고라리라 하고 무장면에 편입하였...

  • 고란초(皐蘭草)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북도 고창군 소요산 소요사 주변에 서식하고 있는 양치식물 고란초과의 상록성 여러해살이풀. 고란초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고란사에서 처음 발견되어 고란초라고 불렸는데, 최근 이곳에서는 고란초를 발견할 수 없다. 고란사의 고란초를 가지고 있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믿음과 사람들이 남획하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현재 산림청에서 선정한 희귀식물로 보호 가치가 높은 식물이다. 뿌리줄기는 옆...

  • 고려시대(高麗時代)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918년부터 1392년까지 존속한 전라북도 고창 지역의 고려 왕조 시대. 918년 왕건(王建)[877~943]이 건국한 고려는 1392년 이성계(李成桂)[1335~1408]의 조선에 멸망할 때까지 34대 474년 간 존속한 왕조이다. 현재의 전라북도 고창 지역은 고려 시대에는 고부군에 속한 상질현(尙質縣)과 영광군에 속한 장사현(長沙縣), 고창현(高敞縣), 무송현(茂松縣) 등 네...

  • 고리포(古里浦)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자룡리에 있는 조선 시대 봉수대 관련 포구. 조선 시대 고리포는 봉화를 올렸던 고리포 봉수대가 있었던 포구로 유명하며 봉군들이 머물렀던 마을로 추정된다. 봉수대는 포구 북동쪽 600여m 지점의 안산[120m]의 정상에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고리포의 봉수가 무장현의 서쪽 20리에 있다고 했는데, 이는 구시포의 남서쪽 약 1.8...

  • 고리포 봉수(古里浦烽燧)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자룡리에 있었던 조선 시대 통신 시설.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의 경우, 봉수대는 고창현[현 고창읍]과 흥덕현[현 흥덕면]에는 없었고, 무장현[현 무장면]에만 두 곳이 설치되었다. 그 이유는 무장현이 바닷가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무장현 봉수조를 보면 “고리포봉수재현서이십리남응영광군홍농산북응소응포(古里浦烽燧在縣西二十里南應靈光郡弘農山...

  • 고문서(古文書)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시대부터 근대 개항기까지 전라북도 고창 지역을 소재로 전해온 문서. 문서란 경우에 따라서 서책·서적을 뜻하기도 하였고, 추안(推案)·국안(鞫案) 등 재판 관계의 신문·진술 기록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또한 개인과 개인 간에 토지·노비·가옥의 매매, 재산의 상속, 전곡(錢穀)의 차용 시에 주고받는 글은 주로 문권(文券)·문계(文契)·문기(文記) 등을 썼으나, 흔히 땅문서·종문서·...

  • 고부천(古阜川)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도림리에서 발원하여 동림저수지를 지나 동진강과 합류하여 서해로 흘러드는 하천. 동진강 제2지류인 고부천은 신림면 도림리 무명산에서 발원하여 남서쪽으로 약 3㎞를 흘러 내려가서 신림면 송용리를 지나 북쪽으로 급회하여 흐르며, 약 6㎞ 흘러 내려가서 좌안으로 가서 동림저수지로 유입한다. 성내면 덕산리를 지나 정읍시를 좌측으로 흐른뒤 동진강과 합류한 뒤 부안군 동...

  • 고분(古墳)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 있는 마한에서 백제 시대에 이르는 고대 무덤. 고분은 과거 우리 조상이 묻힌 무덤을 통칭하는 옛무덤을 말하지만, 고고학에서는 일정한 형식을 갖춘 한정된 시대의 무덤을 말한다. 여기에서 한정된 시대란 고대까지를 말하는데, 고대 특히 삼국 시대 분묘를 의미한다. 본디 고분이란 인간의 마지막 통과 의례인 장례의 결과로 남겨진 기념물로서 당시인의 사유 체계와 내세관이...

  • 고사리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두암리에 있는 녹색 농촌 체험 마을. 고창군의 서남에 위치한 공음면은 백제 시대에 상로현(上老縣)에 속해 있었으며, 신라 시대에는 상로현을 개칭한 장사현(長沙縣)에 속하였다가 1417년(태종 17) 무송현(茂松縣)과 장사현이 병합되어 무장현으로 예속되었다. 그 후 1914년 와공면과 동음치면이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공음(孔音)으로 개칭되었다. 고사리마을은...

  • 고산(高山)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 무송리·산수리와 전라남도 장성군 삼계면에 걸쳐 있는 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고창현, 흥덕현, 무장현을 합하여서 고창군이 되었다. 고산은 무장현에서 제일 높다고 하여 고산이라 부르고 있다. 고산이 영산강의 분수령인 고창 들녘에 높이 솟아 주변의 조망대 역할을 한다. 고산은 덕유산이나 지리산에 비하면 높이는 낮지만 평야지로 형성된 고창 지역에서는 예...

  • 고산성(高山城)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상금리와 성송면 무송리, 전라남도 장성군 삼계면 생촌리와 경계를 이루는 백제 시대 석성. 고창군 대산면과 성송면 일원은 백제 시대 송미지현[현 성송면, 대산면, 무장면 일원]에 속하다가 무송현으로 개칭되었고, 1417년(태종 17) 무송현이 장사현과 병합하면서 무장현이 되었다. 고산성에 대한 문헌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무장 고적조에 “...

  • 고색창연 복분자마을의 첫인상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봄볕이 한가로운 3월 중순, 담쟁이넝쿨로 보아 족히 수백 년은 넘었을 옛 돌담길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진 길게 난 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골목길을 걸었다. 어느 집 돌담 너머에는 따사로운 봄볕을 받으며 복사꽃이 함초롬히 피었고, 그 옆에는 노란 산수유 꽃이 시샘하듯 이른 봄 자태를 뽐낸다. 몇 발짝 옮기지도 않았는데 마당이 몹시 넓어 보이는 어느 집, 활짝 열려 있는 대문간 옆에 커...

  • 고석진(高石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정여(貞汝), 호는 수남(秀南)이다. 1856년 1월 11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에서 태어났다. 고석진은 최익현(崔益鉉)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1906년 최익현이 전라북도 태인에서 의거를 일으킬 때 참모로서 최제학(崔濟學)·최학령(崔鶴齡)·이용길(李容吉) 등과 함께 각 지방을 돌...

  • 고성 터(古城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예지리에 있는 백제 시대 성 터. 백제 시대에 고창 지역의 인구가 다른 지역보다 많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이유는 고창군 관내에 백제 시대의 성(城)들이 다른 지역보다 많다는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조선고적조사자료(朝鮮古蹟調査資料)』에 의하면 흥덕면 흥덕리, 아산면 상갑리, 오산면[고수면: 오산면은 뒤에 고창읍과 고수면에 나뉘어 편입되었다] 예지리,...

  • 고성동(古城洞)고성리(古星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성리는 좋은 물과 바위·소나무·대나무 등이 잘 구비되어 ‘사미동(四美洞)’이라 부르렀다. ‘사미(士美)’로 개칭된 뒤 경상남도 고성군(固城郡)의 이름을 따 ‘고성(古星)’이 되었다. 1600여년경 임진왜란이 평정될 무렵 피난 온 김해김씨(金海金氏) 김헌(金憲)의 후손들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청해면...

  • 고성리(古星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성리는 좋은 물과 바위·소나무·대나무 등이 잘 구비되어 ‘사미동(四美洞)’이라 부르렀다. ‘사미(士美)’로 개칭된 뒤 경상남도 고성군(固城郡)의 이름을 따 ‘고성(古星)’이 되었다. 1600여년경 임진왜란이 평정될 무렵 피난 온 김해김씨(金海金氏) 김헌(金憲)의 후손들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본래 무장군(茂長郡) 청해면...

  • 고성봉 산성서산산성(西山山城)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와 아산면 하갑리, 상갑리와 경계를 이루는 성틀봉에 있는 백제 시대 석성. 서산산성에 대한 문헌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나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조선 후기에 서산고성에 대한 기록이 나타난다.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고창 고적조에 “서산고성은 현의 서쪽 15리에 있는데, 곧 회시산의 남쪽 자락이다. 산허리에...

  • 고속국도 15호선, 서해안고속국도서해안고속도로(西海岸高速道路)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춘산리에서 흥덕면 신덕리까지 연결되는 고속 도로. 전라남도 무안군과 목포시에서 경기도 광명시 및 서울특별시 금천구를 잇는 총 연장 340.9㎞의 4차선 도로이다. 고창 구간은 대산면 춘산리~흥덕면 신덕리로 총 31.51㎞이며 4차선이다. 나들목은 선운산나들목과 고창나들목이 있다. 제한 속도는 목포나들목~매송나들목이 최고 110㎞/h, 최저 60㎞/h이며, 고...

  • 고속국도 253호선고창담양고속도로(高敞潭陽高速道路)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남산리에서 은사리까지 연결되는 고속 도로. 전라북도 고창군을 기점으로 하고 전라남도 담양군을 종점으로 하는 호남고속도로의 지선으로 시작점인 고창과 종착점인 담양의 이름에서 유래한 고속 도로이다.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에서 전라남도 담양군 대덕면까지 전 구간 왕복 4차선이다. 총 연장은 42.4㎞이고 제한 속도는 전 구간 최고 속도 100㎞/h, 최저 속도 5...

  • 고수교회(古水敎會)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황산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의 교회. 고수교회는 ‘섬겨야 합니다’를 표어로,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의 삶과 영혼을 섬기는 전도의 삶과 이웃을 섬기는 사랑의 삶을 지향하는 교회이다. 예배와 말씀, 기도, 헌금, 봉사, 전도를 생활화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65년 7월 20일 당시 중앙교회 신도였던 유기모 집사와 3명의 신도가 고창군 고수면 황산리의 한...

  • 고수농공단지(古水農工團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봉산리에 있는 농공 단지. 고수농공단지는 산업 입지 기반 조성을 통하여 공장을 유치하여 고용을 창출하고, 지역 내에서 생산되고 있는 원자재를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고창군 농촌 지역의 소득 증대에 기여하며, 나아가 지역 균형 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1989년 7월 27일 농공 단지로 지정되어 그해 9월 27일 실시 계획이 승인되었고, 같은 해 10월...

  • 고수농공단지고수미래산업단지(高樹未來産業團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봉산리에 있는 농공 산업단지. 고수미래산업단지는 고수농공단지라고도 한다. 산업 입지 기반을 조성하여 공장을 유치하고 고용을 창출하며, 지역산 원자재 사용으로 농촌 지역 소득 증대에 기여하고, 이를 통해 지역 균형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건립되었다. 1989년 7월 27일 전라북도 산업단지로 지정되었다. 1989년 10월 28일 착공하여, 1990...

  • 고수면(古水面)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에 속하는 행정면. 행정구역 개편 전의 이름인 고사면(古沙面)과 수곡면(水谷面)에서 ‘고(古)’자와 ‘수(水)’자를 따 고수면(高水面)이 되었다. 본래 고창군 고사면의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고사면 와촌리(瓦村里)·황산리(黃山里)·상평리(上平里)·두평리(斗坪里)·은사리(隱士里)와 수곡면의 부곡리(芙谷里)·장두리(長斗里)·초내리(...

  • 고수면 마당바우농악단(古水面-農樂團)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황산리에 있는 풍물 단체. 고수면 마당바우농악단은 고창군 고수면에 위치한 고수농협 농가주부모임이 농가 주부들의 취미 활동을 위해 설립하였다. 1993년 고수면 농가주부농악단으로 시작되었으며 2001년 제38회 전라북도민체육대회를 계기로 고수면 마당바우농악단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매년 보름굿를 비롯한 각종 행사에 참여하여 공연하고 있다. 2...

  • 고수면 상평리 십이당산(古水面上坪里-堂山)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상평리에 있는 당산. 당산 신체는 마을 주민들이 인위적으로 배치하는 것을 말하는데, 고창군 곳곳의 마을에서 12당산을 갖춘 마을을 볼 수 있다. 12당산은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의 12지 방위에 나무나 선돌을 배치하여 당산 신체로 삼는 풍속에서 나왔다. 이 풍속은 당산 신체를 마을을 중심으로 12 방위에 배치하여 둘러싸는 방식으로 조성해...

  • 고수면 야학교 항일운동(古水面夜學敎抗日運動)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1923년 12월 고창 지역의 고수면 야학교 학생들이 일으킨 항일 학생 운동. 고창군 고수면 수양회(修養會)에서는 야학 회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보통 야학당이라고도 불렀는데, 주로 학생은 정규 공립보통학교나 사립보통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나이가 찬 청소년이나 학비를 대지 못하는 사람들을 교육하는 곳이었다. 야학 교사들은 민족 의식이 강하고 애국심이 강한 열혈 청년들로 구성되어 학생들...

  • 고수면사무소(古水面事務所)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봉산리에 있는 고수면 관할 행정 기관. 고수면사무소는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과 관련된 지방 행정의 기초 사무를 관장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14년 고사면·수곡면의 일부를 합쳐 두면의 이름을 딴 고수면이 신설되었다. 면사무소가 설치된 시기는 뚜렷한 기록은 없으나 그 무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1935년 3월 1일 오산면(五山面)의 5개리를 고수면으로...

  • 고수미래산업단지(高樹未來産業團地)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봉산리에 있는 농공 산업단지. 고수미래산업단지는 고수농공단지라고도 한다. 산업 입지 기반을 조성하여 공장을 유치하고 고용을 창출하며, 지역산 원자재 사용으로 농촌 지역 소득 증대에 기여하고, 이를 통해 지역 균형 발전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건립되었다. 1989년 7월 27일 전라북도 산업단지로 지정되었다. 1989년 10월 28일 착공하여, 1990...

  • 고수저수지(古水貯水池)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두평리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 고수저수지는 고창군 고수면 상평리와 고창읍 일대에 관개용수를 공급하기 위하여 건립된 저수지로서, 1952년 착공하여 1956년에 준공되었다. 제방 형식은 필댐[죤형]이며, 제방 체적은 5만 5,680㎥, 제방 길이는 231.7m, 제방 높이는 20.56m이다. 총저수량은 2556.7천t, 유효 저수량은 2556.7천t이며,...

  • 고수초등학교(古水初等學校)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황산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친절과 바른 예절로 남을 배려하는 민주적인 어린이, 새롭게 생각하고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어린이, 지덕체를 겸비하고 세계화·정보화 시대를 주도할 실력 있는 어린이, 꿈을 세우고 관리하며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어린이 육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1933년 11월 1일 고수공립보통학교 인가를 받아 1934년 6월 1일 개...

  • 고수초등학교 소장유물(古水初等學校所藏遺物)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와촌리 고수초등학교에 있는 석기 시대에서 조선 시대에 이르는 유물. 고수초등학교 내에 토기, 도기, 자기, 기와, 동경 등 40여 점의 유물이 소장되어 있다. 고수초등학교 소장유물은 폐교된 고수남초등학교에서 이전해 온 것으로 이 지방에 거주하는 오재균 등이 학생들의 시청각 교재로 희사한 것이라고 한다. 전시 유물의 명패에는 출토지가 표기되어 있는데 청자, 백...

  • 고수해마루작은도서관(古水-圖書館)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황산리에 있는 도서관. 고수해마루작은도서관은 고창군립도서관 산하 기관으로 지역민들이 거주지 가까이에서 빠르고 편리하게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생활 터전 가까이에 설립된 소규모 도서관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기업, 시민단체, 지방 자치 단체 등이 함께 만들어 가는 ‘고맙습니다 작은 도서관’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설립되었다. 고수해마루작은도서관은 교육과 문화...

  • 고순진(高舜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의경(義卿), 호는 만취(晩翠)이다. 1863년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송암리 379번지[현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송암리 379번지[송암1길 9-6]]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고시청(高時淸)이다. 고순진은 일찍이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외부주사(外部主事)가 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이...

  • 고순택(高舜澤)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이름은 창주(昶柱)이다. 순택(舜澤)은 자이다. 1856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고제량(高濟良)이다. 고순택은 일찍이 고창의 대표적인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이며 접주였던 손화중(孫華仲) 포의 일원으로 무장, 고창 일대에서 송문수(宋文洙)·최경칠(崔敬七)·문덕중(文德仲)과 함...

  • 고슴도치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전라북도 고창군에 서식하는 고슴도치과에 속하는 포유동물. 고슴도치는 유라시아 대륙에 걸쳐 널리 분포하며, 한반도에는 1종이 서식한다. 유라시아 대륙의 광역 분포 종에서 동북아시아 특산종으로 분류되었고, 한반도 중·남부 개체군은 동북아시아 고슴도치종의 한국 고유아종(E. a. koreensis Mori)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몸길이는 20~25㎝, 꼬리 길이는 2~3.3㎝ 정도이다....

  • 고언(高彦)김축(金軸)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전라북도 고창 출신의 의병. 김축(金軸)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솔과 후학을 거느리고 김천일(金千鎰)의 막하에서 활약하다 이듬해 진주성 싸움에서 순절하였다. 대를 이를 큰아들만 집에 남기고 집안의 남자들이 모두 출진하여 6충, 1효, 4열부를 배출하였다.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고언(高彦), 호는 남계(南溪). 덕원군의 21세손으로 아버지는 함...

  • 고여흥(高汝興)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빈거(賓擧), 호는 요은(鬧隱). 주부를 지낸 고억령(高億齡)의 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고응진(高應軫)이고, 할아버지는 병자호란 때 의병장이었던 여곡(麗谷) 고덕붕(高德鵬)이며, 아버지는 고수겸(高守謙)이다. 부인은 칠원윤씨(漆原尹氏)로 참봉을 지낸 윤사근(尹思勤)의 딸이다. 자녀로 고재정(高在貞) 등이 있다. 고여흥(高...

  • 고영숙(高永叔)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본명은 제중(濟中)이다. 영숙(永叔)은 자이다. 1867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용교리 교동에서 태어났다. 고영숙이 동학에 언제 입교(入敎)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892년 8월에 일어난 선운사 마애불비기 탈취사건(禪雲寺磨崖佛秘記奪取事件) 때 강경중(姜敬重)·오지영(吳知泳)과 함께...

  • 고예진(高禮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계문(季文), 호는 송천(松川)이다. 1875년 11월 24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고시필(高時必)이다. 고예진은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된 뒤 형제들인 고용진(高龍鎭), 고석진(高石鎭)이 최익현(崔益鉉)과 거사할 것을 계획하자 가담하였다. 1906년...

  • 고용진(高龍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호는 송재(松齋), 이명(異名)은 고운서(高雲瑞)이다. 1850년 10월 1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에서 고시필(高時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고용진은 1878년 아우 고석진(高石鎭), 고예진(高禮鎭)과 함께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의 문하에 들어갔다. 1906년 4월 전라북도 정...

  • 고우열(高友說)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유학자.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은경(殷卿), 호는 옥호(玉湖). 주부 고억령(高億齡)의 후손으로, 고조할아버지는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킨 여곡(麗谷) 고덕붕(高德鵬)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고수겸(高守謙)이다. 할아버지는 요은(鬧隱) 고여흥(高汝興)이며, 아버지는 옥숙(玉淑) 고재혁(高在爀)이다. 부인은 도강김씨(道康金氏)로 김세기(金世起)의 딸이다. 자...

  • 고운서(高雲瑞)고용진(高龍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호는 송재(松齋), 이명(異名)은 고운서(高雲瑞)이다. 1850년 10월 1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에서 고시필(高時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고용진은 1878년 아우 고석진(高石鎭), 고예진(高禮鎭)과 함께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의 문하에 들어갔다. 1906년 4월 전라북도 정...

  • 고인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청동기 시대 대표적인 무덤. 고인돌은 거대한 돌을 이용하여 만든 선사 시대 거석 건조물의 일종으로 작은 돌이 큰 돌을 괴고 있다는 뜻의 괸돌에서 유래하였다. 이를 ‘지석묘’라고도 한다. 고인돌은 한반도와 더불어 중국의 랴오닝성[遼寧省]과 산둥[山東], 일본의 큐슈[九州] 등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일원에 분포권을 형성하고 있다. 한반도는 그중에서 집...

  • 고인돌 마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도산리에 있는 문화 체험 마을. 고인돌마을은 자연 마을인 도산마을에 있다. 도산마을은 조선 성종 대에 안동김씨(安東金氏)와 청도김씨(淸道金氏)가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한 마을로, 마을이 평탄한 길옆에 있고 뒤쪽에 자그마한 산이 있어서 마을 이름을 도산마을이라고 칭하였다고 한다. 행정자치부에서 시행한 아름마을 가꾸기 사업이 시발점이 되었으며, 2007년 행정자치...

  • 고인돌 질마재 따라 백리 길(-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문화란 쉽다고 한다. 그렇지만 쉽다고 해서 누구나 문화를 쉽게 표현할 수는 없다. 여기 우리 삶과 문화와 역사가 함께 종합 선물 세트처럼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곳이 있다. 청동기 시대 고인돌 문화에서 근대 시문학까지, 하지만 어찌 그것을 눈으로만 볼 수 있겠는가? 가슴으로 귀로 때로는 맛을 보기 위해 길을 떠나보자.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인돌이 1.6㎞에 걸쳐 약 447기가...

  • 고인돌 채석장(-採石場)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와 아산면 상갑리 일원에 있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 축조를 위한 채석장. 고창 고인돌군은 성틀봉과 중봉을 중심으로 한 남사면에 주로 축조되었으며, 파괴된 고인돌 덮개돌 등을 포함하면 약 500여 기의 고인돌이 있었던 지역으로, 세계 최대 고인돌 밀집 지역이다. 다수의 고인돌을 축조하기 위하서는 그에 걸맞는 덮개돌 등을 채굴했던 채굴지가 있게 마련인데, 성...

  • 고인돌 탐방열차모로모로 탐방열차(-探訪列車)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에 있는 탐방 열차. 고인돌 유적의 보존을 위한 도로 폐쇄로 도보로만 탐방해야 하는 고인돌 유적지와 고창고인돌박물관 사이의 비교적 먼 거리를 왕래하는 이동 수단을 제공하여 노약자나 어린이, 관광객들에게 편익을 제공하고 큰 호기심과 즐거움을 주기 위해 건립되었다. 2009년 2월 27일 고창고인돌박물관 광장에서 처음 시승식이 열렸으며 같은 해 4월 1일부...

  • 고인돌들꽃학습원고창고인돌들꽃학습원(高敞支石墓-學習園)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덕정리에 있는 자연 생태 학습장. 고창고인돌들꽃학습원은 학생들의 자연 학습 공간과 도시민의 농촌 체험 현장으로 이용되고 있는 국내 최초의 민간 들꽃 학습원이다. 우리 들꽃의 아름다움과 자원으로서의 가치를 발견하면서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이학성 원장이 평생 사업으로 그동안 모은 전 재산을 들여 건립하였다. 그리고 학습원을 만들기...

  • 고전리(高田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전리는 마을보다 주변에 있는 밭이 지대가 높아 고전(高田)이라 하였다. 고전포, 고전호라고도 한다. 김해김씨(金海金氏) 목경파(牧卿波) 김영하(金永夏)의 6세손 김관승(金寬承)이 정착하여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 조선 시대 무장군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예동(禮洞), 만돌(萬突), 고전,...

  • 고전리 고전 당산(高田里高田堂山)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 고전리 고전마을에 있는 당산과 당산나무. 고전리 고전마을에는 당산나무 두 그루와 당집이 한 채 있는데, 매년 당산을 중심으로 섣달그믐에 마을의 안녕을 비는 공동 제사를 지낸다. 예전에는 신목(神木)이 번성하여 가지를 꺾은 사람은 아프거나 죽었다고 하며, 당집의 신상(神像)을 함부로 보았을 경우 낙태를 했다고 한다. 고전마을의 동북쪽 산봉우리에 나무 두 그루가...

  • 고전포고전리(高田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전리는 마을보다 주변에 있는 밭이 지대가 높아 고전(高田)이라 하였다. 고전포, 고전호라고도 한다. 김해김씨(金海金氏) 목경파(牧卿波) 김영하(金永夏)의 6세손 김관승(金寬承)이 정착하여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 조선 시대 무장군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예동(禮洞), 만돌(萬突), 고전,...

  • 고전호고전리(高田里)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전리는 마을보다 주변에 있는 밭이 지대가 높아 고전(高田)이라 하였다. 고전포, 고전호라고도 한다. 김해김씨(金海金氏) 목경파(牧卿波) 김영하(金永夏)의 6세손 김관승(金寬承)이 정착하여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 조선 시대 무장군 지역으로, 1914년 4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예동(禮洞), 만돌(萬突), 고전,...

  • 고제남(高濟南)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개항기 고창 출신의 의병.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복경(復京), 호는 인산(仁山)이다. 1887년 3월 1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옥제리에서 태어났다. 고제남은 족숙(族叔)인 고석진(高石鎭)의 문하에서 공부했는데, 남달리 지용(智勇)이 뛰어났다고 한다.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1907년 당시 19세의 나이로 김영백(金永伯) 부대의 좌익장(左翼將)으로 활동했으며, 같은...

  • 고제만(高濟萬)고치범(高致範)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치범(致範), 호는 죽계(竹溪), 이명(異名)은 고제만(高濟萬)이다. 1860년 8월 20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월산리 165번지에서 태어났다. 고치범은 을사늑약에 분개하여 1906년 4월 16일 최익현(崔益鉉) 의진(義陣)에 합류, 태인 의거 때 최제학(崔濟學), 최학령(崔學領) 등의...

  • 고제중(高濟中)고영숙(高永叔)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본명은 제중(濟中)이다. 영숙(永叔)은 자이다. 1867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용교리 교동에서 태어났다. 고영숙이 동학에 언제 입교(入敎)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892년 8월에 일어난 선운사 마애불비기 탈취사건(禪雲寺磨崖佛秘記奪取事件) 때 강경중(姜敬重)·오지영(吳知泳)과 함께...

  • 고제천(高濟川)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의병이자 독립운동가.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자는 희제(希齊), 이명(異名)은 자성(子聖)이다. 1875년 12월 12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554번지[가평1길 51-3]에서 태어났다. 고제천은 1906년 4월 최익현(崔益鉉)이 전라북도 태인[현 정읍]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숙부인 고석진(高石鎭)을 쫓아 의병으로 참여하였다. 19...

  • 고제택 정려(高濟澤旌閭) 새 창으로 보기새 창으로 보기

    대표시청각 이미지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옥제리에 있는 개항기 효자 고제택(高濟澤)의 정려. 장흥고씨(長興高氏)는 고창군의 명문가이다. 고려가 망하자 고직(高直)은 조선 태종이 벼슬을 주면서 불렀으나 나아가지 않고 영광을 거쳐 흥덕현[현 흥덕면]의 고려곡에 은거하면서 살았다. 장흥고씨는 흥덕면과 신림면, 성내면 옥제리, 고창읍 죽림리, 동산리에 퍼져 큰 성씨를 이루고 있다. 고제택(高濟澤)은 천성이...

  • 고창 가평초등학교가평초등학교(加平初等學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