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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하고만 산 것이 뭔 자랑이라고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C030201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미옥

시집살이 이야기만큼 흔한 것이 또 있을까? 어디를 가나 할머니들이 모여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신세 한탄. 그 중에서도 모진 시집살이 이야기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회관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할머니들 사이에서도 시집살이 이야기는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시집살이 이야기라는 것이 아무리 들어도 싫증나지 않고 매번 마음이 아픈 것이, 당신들 가슴 속 밑바닥에 고여 있는 깊은 슬픔에 공감하기 때문일 것이다.

구수마을 김금순[1928년생] 씨도 그런 지독한 시집살이를 당하며 산 세월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그런 할머니에게 시집살이 이야기를 해 달라고 하자 “바보여서 당하고만 산 것이 뭔 자랑이라고 말을 한다요?” 하며 톡 쏘아붙인다. 그러면서도 이내 가슴 깊은 곳에 응어리를 풀어놓듯이 이야기를 쏟아 낸다.

[시어머니 시집살이 말도 못 하지]

김금순 씨는 영광에서 스무 살 때인 1948년 2월에 이곳 구수내[구수마을]로 시집을 왔다. 혼인 후에 1남 1녀의 자녀를 두었지만 아들은 일찍 사고로 죽어 버리고, 시집간 딸만 하나 있을 뿐이다.

본래부터 시댁은 가난했다. 전답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워낙에 가난한 살림살이였던 터라 남편과 시아주버니가 남의집살이를 해서 돈을 벌어야만 했다. 당시에 남의집살이를 하면 1년에 쌀 여덟 가마니를 정도를 받았지만, 남편은 1년에 고작 한두 차례 집에 와서 옷가지만 챙겨 가고 생활비라는 것도 주지 않아 자신과 아이들은 힘든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남편과 김금순 씨는 부부간의 정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남편도 없이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그녀에게 시어머니는 무척이나 모질게 대했다고 한다.

“형님은 결혼해 갖고 한테서[한집에서 같이] 살제, 한테 살았제. 시방은 그렇고 헌다 그므는[그러면은] 시방 젊은 사람은 안 살아. [시어머니가] 밥도 안 주고, 미워라고 밥도 안 줘. 고렇고 시집살이를 허고 살았어. 맥없이 고러고 미워라 해. 베 짜믄[짜면] 베 잘 못 짠다 구박허고. 그럭했어. 그런 시대를 살았어. 저금[분가] 나와서 저~ 높은 산에 가서 나무 해다가 떼고. [머리] 욱에다[위에다] 여다가[이고 가서] 불 떼고 살았어. 방아, 도구질 해서 밥 해 먹고.”

시어머니는 늘 자신에게 화를 내면서 구박했다고 한다. 베를 짜면 베를 잘 못 짠다고 구박하고, 며느리가 밉다고 밥도 제대로 챙겨 주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도 시어머니가 왜 그토록 자신에게 모질게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김금순 씨. 간혹 시집간 딸에게 자신의 지난 세월을 하소연하듯 말하면, 딸은 엄마가 바보여서 당하고 산 것이니 누구를 탓할 필요도 없다고 매정하게 말한단다.

김금순 씨는 그런 딸의 말이 한 없이 서운하기도 하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리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고 한다. 그러니 사람들을 향해서 “바보여서 당하고만 산 것이 뭔 자랑이라고 말을 한다요?” 하며 내뱉듯 던지는 김금순 씨의 말은, 시어머니 앞에서 한 번도 당당하게 대들지 못하고 살아온 바보 같은 자신을 책망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정보제공]

  • •  김금순(여, 1928년생,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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