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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한기에는 마을회관에 모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C010202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마래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경숙

[일과 놀이가 공존하는 모정]

농촌 마을을 대표하는 풍경은 아마도 아름드리 정자나무 밑에 다소곳하게 세워져 있는 모정(茅亭)[여름철 마을 주민이 더위를 피하고 휴식하기 위해 세운 마을의 공유ㆍ공용 건물]일 것이다. 한여름 오후 모정 위에서는 마을 어른들이 빙 둘러 앉아 더위를 식히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그 아래로 흐르는 시냇물에서 멱을 감는 아이들의 모습까지 더해지면, 그보다 더 시원하고 목가적인 여름철 풍경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모정은 보통 두 칸 정도의 크기로 짓는다. 사방이 다 터져 있어 바람이 솔솔 들어온다. 양반들이 지은 누정과는 위치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누정은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나 경치가 좋은 곳에 지어져 있다. 농사를 감독하거나 풍류를 즐기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정은 주거지와 경작지 사이에 위치한다. 공음면 구암리 마래마을 모정은 마을 앞으로 넓게 펼쳐져 있는 ‘마래 앞들’과 주거지 경계에 있으며, 구수마을 모정 역시 주거지와 경작지가 만나는 곳에 세워져 있다. 따라서 모정에서는 일과 놀이가 공존한다. 농번기에는 농부들이 더위를 피해 잠시 다리를 펴고 쉬어 가기도 하고, 농한기에는 음식을 나눠 먹으면서 한바탕 놀이마당을 펼치기도 한다.

그러나 요즘에는 시골 마을에 가도 그런 모습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가장 큰 원인은 인구가 줄었기 때문이지만, 현대식으로 지은 마을회관에 냉난방 시설이 들어가면서 그 역할을 대신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이유이다. 근래에 세워진 대부분의 마을회관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쉴 수 있도록 에어컨과 기름보일러가 필수적으로 설치되어 있고,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도록 싱크대ㆍ가스레인지ㆍ밥솥ㆍ냉장고 등도 기본적으로 설치되어 있다. 여름철과 겨울철의 농한기 때는 마을 사람들이 회관에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면서 더위를 식히고 추위를 피한다.

[새로운 공동체 사회를 열어 주는 마을회관]

이렇듯 마을회관은 이제 마을의 새로운 공동체 사회를 열어 주고 있다. 노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과는 하루 세끼 식사인데, 노인들의 식사 공동체가 이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할머니들은 보통 집에서 아침식사를 해결한 후 마을회관으로 모여든다. 그렇게 모여서 놀다가 때가 되면 쌀을 씻고 채소거리를 다듬고 밥을 하고 김치를 꺼내 함께 점심을 먹는다. 식사 공동체를 열어 가면서 적적한 외로움을 달래는 것이다.

남편을 일찍 여윈 할머니들의 식사 공동체는 더욱 잘 이루어진다. 부양해야 할 남편이 없기에 할머니들끼리 더욱 깊은 유대감을 갖게 된다. 이들은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하루를 단위로 모이고 흩어짐을 반복하면서 노인 공동체를 일구어 가고 있다. 할머니들은 식사 공동체를 할아버지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한다. 기왕 먹는 것, 할아버지들의 먹을거리도 함께 준비한다.

이러한 식사 공동체는 삶의 공동체로 이어진다. 속내를 다 아는 처지인지라,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특히 겨울철에는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마을 노인들 대부분이 이렇게 마을회관에서 생활하고 있다.

동학 농민 운동과 관련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구암리 구수마을회관에 찾아갔더니, 10여 명의 어른들이 빙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방 한가운데 있는 조그마한 상에는 과자 부스러기와 커피, 과일 같은 주전부리할 음식들이 놓여 있다. 돈을 조금씩 추렴하거나 집에 있는 음식을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간혹 쌀이나 돈을 내놓는 경우도 있는데, 그 기록을 남겨 놓고자 벽 위에 희사자 명단을 붙여 놓았다. 2004년 마을회관이 건립된 후에 시작된 희사자 명단이 길게 이어져 있어 머지않아 여백이 채워질 것 같았다.

구암리 마래마을회관도 마찬가지다. 마을에 크고 작은 일이 있을 때마다 마을 이장은 주민들을 회관에 모아 놓고 회의를 한다. 마을회관은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의사를 결정하는 곳으로, 마을의 구심체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다양한 헬스 기구와 노래방 시설이 마련되어 있어 마을의 복지 센터 역할도 한다.

구수마을이나 마래마을은 이제 젊은 사람이 귀한 곳이 되어 버렸다. 그나마 대부분 70대 이상이라 머지않아 노인마저도 귀한 곳이 될 것이다. 모정이나 마을회관을 벗 삼아 살아갈 사람도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사람들이 다 떠나게 되면 모정과 마을회관이 마을을 지킬 것이다. 다시 자신들을 온전히 사용해 줄 새로운 세대들의 귀환을 기다리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

[정보제공]

  • •  전윤오(남, 1938년생,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 노인회장)
  • •  최대기(남, 1938년생,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 이장)
  • •  최인동(남, 1952년생, 공음면 구암리 마래마을 이장)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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