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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향에 배어나는 전통의 향내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B020102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진마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청우

[선운리는 매향의 최적지]

매향(埋香)[내세(來世)의 복을 빌거나 침향을 얻기 위해 참나무나 향나무를 강이나 바다에 담가 둠. 또는 그런 일]을 할 때 참나무는 아무 곳에나 그냥 묻는 것이 아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매향의 최적지는 계곡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이어야 한단다. 따라서 매향은 섬이나 해안 지역, 구체적으로는 개펄이 최적지라 알려져 있다.

황점술[1944년생] 씨는 부안면 선운리 진마마을에 담수(淡水)와 해수(海水)가 만나는 지점의 면적이 꽤 넓었다고 회고한다. 또한 김복덕[1923년생] 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마을의 방앗간 앞[서정주 시인의 외가]까지 해수가 들어와 어업이 용이했다고 말한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이 진마마을 사람들에게 침향을 만들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게 하기에 유리했다고 전해진다.

오래 전부터 고귀한 향의 대표로 알려져 온 침향은 인도를 비롯해 동남아 지역에 주로 분포하는 동명(同名) 나무의 수지(樹脂)를, 다시 말해 목질부가 상처를 입거나 부패하여 생긴 수지 부분을 이르는 것이다. 그러나 생산 지역이 외국인데다 그 양 역시 많지 않아 구하기가 어려운 향이었기에, 마치 모든 번쩍이는 것들을 섞어 금(金)을 만들려던 시도처럼, 물에 가라앉는 보통 나무에서 침향을 얻으려는 해안가의 매향 의식이 생기게 되었다. 지금도 전라도 지방 해안가 곳곳에 남아 있는 매향의 흔적들을 통해 참나무 혹은 향나무를 묻고 그것이 침향이 되기를 오랜 기간 기원했음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실제로 침향을 얻게 되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쉽게 가질 수 없었기에 더 간절했을 것이며, 그로써 세대를 물려 가면서까지 염원할 수 있었을 것임은 다른 말이 필요 없으리라.

[먼 후손을 위한 애틋한 마음]

서정주 시인의 『질마재 신화』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산골 물이 바다를 만나러 흘러내려 가다가 바로 따악 그 바닷물과 만나는 언저리에 굵직굵직한 참나무 토막들을 잠거 넣어 둡니다. 침향은, 물론 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이 잠근 참나무 토막들을 다시 건져 말려서 빠개어 쓰는 겁니다만, 아무리 짧아도 2~3백 년은 수저(水底)에 가라앉아 있은 것이라야 향내가 제대로 나기 비롯한다 합니다. -서정주, 「침향」, 『질마재 신화』 중에서

서정주 시인의 친동생인 서정태[1923년생] 씨는 “이와 같은 매향의 전통은 마을의 소금과 연관되어 있었을 것이다.”고 말한다. 그 말인즉슨, 해안 마을에서는 바닷물을 아궁이 불에 졸여 소금을 만드는 전통이 있는데, 탁한 바닷물을 정화해서 써야 할 필요성 때문에 참나무로 그 물을 가둘 ‘솟등’을 개펄 위에 만들었고, 바로 그것이 오랜 세월 해수와 소요산에서 이어지는 주진천[또는 인천강ㆍ장수강] 자락의 담수에 쓸리면서 자연스럽게 침향이 되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여하간 참나무와 담수ㆍ해수의 만남, 그리고 오랜 기다림을 통한 염원과의 결합에서 무엇인가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우리네 삶 속에서 언제든지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금 이렇게 묻힌 나무에는, 나무가 담수와 해수가 만나는 지점에 가라앉아 있다가, 수백 년이 지나면 침향이 되고, 그 뒤에는 바다에서 용이 솟아오르듯이 스스로 물 위로 떠오른다는 이야기까지 담겨 있다.

이러한 매향의 전통에는 그 자체의 향내가 배어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그 향은 꽃향기처럼 직접적으로 코를 통해 맡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떤 누군가를, 그것도 지금 이 자리에 없는 먼 후손을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 씀씀이에서 풍겨져 나오는 내면적인 향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넓은 바닷물과 마을 골골을 여유 있게 흐르던 담수가 만나는 지점에 침향을 담그듯,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지점에서 진정한 향이 나오는 것이다.

진마마을은 이렇듯 침향을 만드는 전통을 가능하게 한 지리적 요건과 마음의 멋이 공존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시인 역시 ‘이것을 넣는 이와 꺼내 쓰는 사람 사이의 수백 수천 년’을 언급하고 있어 주목된다. 침향을 만드는 마음은 물론 마을의 지리적 특성에 근거했겠지만, 그보다 ‘누군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후대’를 위한 또 다른 정성이 깊이 작용했기 때문이 아닐까.

[정보제공]

  • •  김복덕(여, 1923년생, 부안면 선운리 진마마을 주민)
  • •  서정태(남, 1923년생, 부안면 선운리 진마마을 주민)
  • •  황점술(남, 1944년생, 부안면 선운리 진마마을 주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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