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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찬히 둘러봐야 제대로 보이는 마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A020401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명철

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큼지막하게 ‘가평마을’이라고 새겨진 표지석이 서 있다. 방장산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고, 갈곡천과 덕화천이 마을을 사이에 두고 흐르다 마을 앞 들판에서 몸을 섞는다. 바로 그곳에서 마을 사람들은 벼농사와 복분자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이어 가고 있다.

[돌담길에서 만난 옛 풍경]

슬쩍 지나쳐서는 진면목이 드러나지 않는 곳! 가평마을이 딱 그렇다. 가평마을에는 수백 년에 걸친 시간의 흔적들이 오롯이 남아 있다. 가평마을에서 가장 유명세를 타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돌담길이다. 가평마을 돌담의 길이를 합하면 무려 3㎞나 된다.

가평마을의 담은 대부분 돌담이다. 그만큼 주변에 돌이 많았던 것일까. 아니나 다를까, 마을을 끼고 흐르는 갈곡천에는 담장에 쌓인 고만고만한 돌이 무더기로 놓여 있다. 크기나 모양이 각양각색인 돌을 잘도 쌓았다. 무너지거나 부서진 흔적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돌담 틈새에는 여러 가지 생물들이 작은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일부러 자연을 불러들인 것 같기도 하고 자연이 스스로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 같기도 하다. 어찌됐든 가평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다. 그 어디에서도 자연을 거역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돌담은 인위적인 콘크리트 담장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자연스럽고 포근하고 아늑하다.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자식을 반기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동네 꼬마들의 소꿉놀이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되뇌는 술래잡기 놀이를 할 때의 그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하는 소리, 날카로운 엉덩이 공격을 참다 못 해 쏟아져 나오는 말뚝박기 놀이의 비명 소리, 달력의 임무를 다하지 못한 채 찢겨져 뭉뚝하게 접혀진 딱지가 흙길과 부딪히면서 내는 딱지놀이의 경쾌한 마찰음, 어슴푸레한 해질녘 지게를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버지의 모습까지 눈에 그려지는 듯 펼쳐진다.

돌담길을 걷다가 양 옆으로 고개를 돌려 가만히 들여다보면, 집 안 풍경이 고스란히 들어온다. 담장을 쌓긴 했지만 낮게 쌓거나 틈새를 남겨 두었다. 경계는 지었지만 굳이 가릴 필요는 없었던, 그렇게 이웃과 소통하고 싶었던 그 여유가 전해진다. 가평마을에서 돌담은 그저 구획일 뿐이었다. 돌담에는 담쟁이넝쿨도 올라가 있다.

돌담길은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당산할머니에 이른다. 마을의 중심 공간이다.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정월에 이곳에서 당산제를 지낸다. 마을 뒤편에는 철륭할아버지도 있다. 모두 팽나무로 수령 400~500년을 자랑한다. 당산할머니 앞에는 두 기의 입석도 세워져 있다. 마을 사람들은 당산제를 지내는 날 줄다리기를 하고, 입석에 줄을 감아 놓는다.

[근대와 현대의 풍경이 조화를 이룬 마을]

가평마을을 돌아보는 일은 잘 접어놓은 지도를 하나씩 펼치는 것 같다. 하나씩 접은 면을 펼칠 때마다 과거의 시간과 공간들이 펼쳐진다. 가평마을에서 펼쳐지는 시간은 단절되지 않는다. 마을에는 고색창연한 한옥과 사당도 있지만, 1970년대쯤 만들어진 슬라브집도 있고, 1980년대 만들어진 대문도 있으며, 최근에 지어진 현대식 주택도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보건진료소도 있고, 농업협동조합 창고도 있고, 구멍가게도 두 개나 있다. 이렇듯 서로 다른 시대에 지어진 집들이 어색할 법도 하지만, 이곳에서는 희한하게도 서로 잘 어우러진다.

고인돌, 입석, 정미소[2010년 1월 철거됨], 빨래터, 초가집[2009년 말에 철거됨], 방풍숲 등과 웃고사채길, 가운데 고사채길, 아랫고사채길을 따라 찬찬히 둘러보면 있을 것은 다 있다.

비석은 왜 그렇게도 많은지, 마을 구석구석에는 여러 가지 사연을 담은 비석이 참 많이도 세워져 있다. 1970년대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가평초등학교에서는 19명의 학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고, 아름다운 느티나무 숲도 있다. 그래서인지 가평마을은 ‘고색창연마을’로 불린다. 근대와 현대의 풍경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는 것이다.

찬찬히 마을을 둘러보자면 하루해가 짧다. 기와와 슬레이트로 지붕을 얹은 가옥은 세월의 때가 묻은 흙담벽이며 불을 때는 아궁이, 가마솥, 장독대들과 어우러져 타임머신을 타고 시골의 옛집을 다시 찾은 듯한 느낌을 준다.

가평마을의 아름다움은 결국 사람들이 살아 온 흔적에서 나온다. 그 중 최고의 풍경은 마을 안쪽 돌담길을 굽이굽이 돌아들어 만나는 도동사이다. 1928년 3월에 지어진 도동사는 개항기 의병장 면암 최익현 선생과 수남 고석진 선생 등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아직도 전국 유림들이 선현들의 위국충절을 기리는 제를 지내고 있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찾는 이의 마음을 빼앗는다. 도동사 내에는 큰 고인돌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사당 안으로 흐는 물길로 인해 더욱 차분해진다.

• 찾아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 고창IC 좌회전 → 정읍 방향 → 세곡삼거리 우회전 → 지방도 708호선 → 왕림사거리 우회전 → 가평마을]

• 숙박 정보: 행복한민박, 한우네민박, 민우네민박, 고색창연마을체험관

[정보제공]

  • •  고남규(남, 1939년생, 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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