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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강을 엎었다는 복분자 전설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A020101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나경수

중국 최초의 역사서인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중구삭금(衆口鑠金)’이란 말이 나온다. 많은 사람들의 입은 쇠도 녹인다는 뜻이다. 전설의 힘! 오랜 세월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전설은 쇠도 녹일 정도로 힘이 강하다. 더구나 복분자 전설은 힘의 원천인 정력을 내용으로 하고 있어 더욱더 흥미롭다.

[마을에서 전해 오는 복분자 이야기]

한여름 어스름해질 무렵, 당산나무 밑에 모여 앉아 놀고 있는 마을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어 말참견을 했다. 고색창연한 이 마을에 전해 오는 복분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했더니 몇 사람이 앞을 다퉜다. 놀랍게도 그냥 요강이 엎어졌다는 흔히 듣는 말과는 달리 이 마을에서는 대단히 완성도 높은 전설을 전해 듣게 되었다. 환갑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옛날 어떤 부부가 넉넉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늙도록 자식이 없었다 한다. 주변에 있는 영험하다는 산천의 신령에게는 물론, 불공이며 무당을 불러 굿도 해 보고, 자식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는 약제는 먹어 보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였다. 그리하여 어느 구름에 비가 샌지 모르지만 노부부는 환갑을 앞두고 천금 같은 아들 하나를 얻었다.

그런데 이 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허약하여 성한 날보다 아픈 날이 많았다. 노부부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도사가 마을을 지나다가 그 아이를 보고는 혀를 끌끌 차면서 혼잣말로, “곱기는 한데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하는 것이었다. 뒤늦게 말을 전해들은 노부부는 버선발로 십리 길을 쫓아가서 도사의 옷소매를 붙들고 통사정을 하였다.

“제발 우리 아들을 살려만 주십시오.” 허공만 쳐다보던 도사는 노부부가 너무 안되었던지 한 가지 비방이 있노라고 가르쳐 주었다. 산에 가서 이러저러하게 생긴 열매를 따다 먹이면 효능이 있을 것이라고.

그날로 노부부는 가시에 찔리고 쓸려서 손등이며 온몸이 예리한 칼날로 그어 놓은 것처럼 피가 낭자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도사가 가르쳐 준 열매를 열심히 따다가 아들에게 먹였다. 다음날 아침, 아들이 일어나자마자 요강에 오줌을 누는데 소리가 마치 폭포수 같았다. 오줌발을 견디지 못하고 마침내 요강이 엎어져 버렸다. 그래서 그 나무 열매를 요강이 엎어졌다고 해서 복분자라 했고, 아이는 거의 백 살이 될 때까지 살았다고 한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곱게 늙어 가는 마을 노인 한 분이 말을 거들면서 내용이 다른 이야기 하나를 또 들려주었다.

옛날 어느 마을에 금슬 좋은 신혼부부가 살았더라 한다. 하루는 신랑이 어떤 일로 높은 산을 넘어 다른 마을을 다녀와야 했다. 빨리 다녀오라는 신부의 말에 뭔가를 기대했던지 급히 산길을 서두르다가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헤매면 헤맬수록 자꾸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허기진 신랑은 때마침 검게 익어 가는 산딸기같이 생긴 열매를 따먹으며 주린 배를 채웠다. 길도 없는 험한 산을 이렇게 헤매다가 천신만고 끝에 만신창이가 다 되어 겨우 집을 찾아 돌아왔다. 자초지종을 신부에게 말하는 중간에 긴장이 풀이고 또 쌓인 피로가 몰려와 그 자리에 쓰러져 잠이 들고 말았다.

하룻밤을 꿀 같은 잠에 떨어졌던 신랑은 아침에 부스스 잠을 털고 일어나 뒷간으로 가 소변을 보았다. 오줌발이 나가는데 예전 같지 않았다. 얼마나 힘이 넘쳤는지 오줌 그릇으로 쓰는 옹기동이가 기우뚱거리더니 넘어져 버리는 것이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신혼부부는 더욱 금슬이 좋아졌고, 이 말을 전해들은 마을 사람들은 그 나무열매를 찾아 따먹기 시작하면서 말이 삽시간에 인근에 퍼져 누군가 복분자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땀을 흘리며 친구들과 뛰놀던 곱상한 여자아이 하나가 조사자의 카메라와 캠코더에 관심을 보이면서 가까이 앉아 있더니, 눈을 번쩍이며 담임선생님께 들었다는 복분자 이야기를 전했다.

“옛날 어느 고을에 무남독녀를 둔 이방 한 명이 살고 있었대요. 하루는 원님이 이방을 부르더니 “복분자가 그리 몸에 좋다는데, 내가 요즘 몸이 허하니 언제까지 구해 오라.” 하는 것이었어요. 이방은 그날부터 걱정이 태산이었어요. 원님 성깔에 복분자를 만약 구해 오지 않으면 어떤 벌이 떨어질지 모를 판이에요. 걱정이 지나치면 몸이 상하는 법이라, 구해 오라는 날이 점점 가까워 오자 이방은 그만 몸져누워 버렸어요.

효성이 지극한 무남독녀 외딸은 영문을 모르다가 아버지로부터 복분자를 구해 오라는 원님의 추상같은 명령 때문에 몸져누웠다는 말을 듣게 되었어요. 정해진 날짜가 되자 이방의 딸은 원님을 찾아갔어요. ‘제 아버님께서 원님께 바치기 위해 복분자를 따러 산에 올라갔다가 그만 독사에 물려서 곧 죽게 생겼습니다.’ 하자 원님은 대뜸 역정을 내는 것이었어요. ‘이 한겨울에 독사는 무슨 독사란 말이냐?’ 이방의 딸은 원님의 말끝에 ‘그리 하오면 이 한 겨울에 복분자가 어디 있다고 저의 아버님께 복분자를 따오라는 것이옵니까?’ 이 말에 원님은 깊이 뉘우쳤다는 이야기였어요.”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짜리가 담임선생님께 들었다는 이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았더니, 원래는 산딸기 이야기로 전해지던 것이 복분자 전설로 둔갑하여 떠돌고 있었다. 뭔가가 유명해지면 예전부터 전해 오는 이야기기가 이처럼 재구성되어 새롭게 전해지기도 하는 것이 전설의 맛이기도 하다.

[정보제공]

  • •  고남규(남, 1939년생, 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이장)
  • •  한흥순(여, 1939년생, 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주민)
  • •  고복상(남, 1941년생, 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주민, 고색창연테마마을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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