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마을 곳곳에 담긴 선현의 숨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A010202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서해숙

[처사 고시철이 음풍농월했던 만정]

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북서쪽에 있었다는 만정은 현재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일대에 있는 무덤만이 옛이야기를 전하듯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다. 만정은 고시철 선생의 호를 딴 것으로, 선생이 만년에 지어 친지 문인들과 독서하고 음풍농월했던 정자라고 한다. 지은 연대는 뚜렷하지 않으나 조선 후기 철종 말엽인 1860년 전후로 추정하고 있다. 이후 1882년 큰 바람에 무너져 폐허로 남아 있다가 증손자인 고기상이 1944년에 중건하였다. 그러나 6ㆍ25전쟁 당시 국군 전투대가 주둔하면서 크게 훼손되었는데, 전란 이후 마을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잠깐잠깐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유지되다 1986년에 철거되었다.

지금 이곳에는 만정을 대신해 만정유지기적비(晩亭遺址紀蹟碑)와 방장기노계기념비(方丈耆老契紀念碑)가 나란히 세워져 있으며, 그 옆으로 멋스럽게 휘어져 솟아 있는 소나무가 두 그루 서 있다. 만정 터에서 주위를 빙 둘러보면 저 멀리 고봉재가 한눈에 들어오고, 바로 앞으로는 널따란 들녘과 그 너머에 옹기종기 드리워진 집들이 줄지어 있어서 한 폭의 수묵화처럼 평화롭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문득, 고시철 선생이 마을 주변으로 잔잔하게 펼쳐진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며 책을 벗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세상에 대한 굳건한 의지를 쌓아 가며 혼란스러워지는 나라를 탄식하며 술 한 잔을 기울였을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리고 그 옛날 가평마을에서 한 시대를 풍미하던 선비들과 유학자들, 큰 뜻을 품었던 젊은 사람들의 모습들도 함께 아른거린다.

[마을 곳곳에 세워진 비석들]

가평마을에는 집과 집을 연결하는 돌담길을 따라 돌아가거나 논길을 따라 넓은 들녘을 지나가다 보면 곳곳에 비석들이 세워져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이 비석들은 돌담과 들녘 그리고 정자와 나무 등과 조화를 이루며 마을의 또 다른 멋스러움을 뽐내고 있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이 비석들이 마을의 대표적인 자랑거리다. 모두들 “우리 마을처럼 비석이 많은 곳은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세상이 변했다고 해도 유교적 덕목은 모든 이들에게 의무이고 자랑이다. 그래서 세상이 급변해도 효와 열을 충실히 쌓고 저 세상으로 간 조상들을 애도하기 위한 후손들의 비석 세우기는 가평마을에서도 계속되고 있으며, 마을 사람들에게 이러한 비석은 단순히 집안의 자랑만은 아닌 마을의 자랑이고 자부심이 되고 있는 것이다.

마을 곳곳에 위치한 비석은 대부분 1990년대 들어와 건립된 것으로, 조상들의 지극한 효와 열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마음과 정성을 담은 것들이다. 실제 이 비석을 세운 이들과 후손들은 대개 외지에 살고 있어서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후손들에게는 이 비석이 자신과 고향인 가평마을을 잇는 중요한 매개체로서, 명절이면 고향을 찾아 조상께 성묘하고 마을에 세워진 이 비석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후손들에게 계승해 줄 가치에 대해서 새삼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가평마을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비석은 당산할머니 앞에서 골목길을 따라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오른쪽 살림집 담장 옆으로 1988년에 세워진 효열부함평이씨기적비(孝烈婦咸平李氏紀蹟碑)이다. 그리고 방향을 왼쪽으로 틀어서 골목길을 따라 가다 보면 집 사이로 1996년에 세운 나문김효부기실비(羅門金孝婦紀實碑)가 서 있다.

마을 어귀 수송정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행주기공노병기적비(幸州奇公老炳紀蹟碑)와 유인김해김씨열행비(孺人金海金氏烈行碑)가 있는데, 모두 1993년에 세웠다고 한다. 또한 수송정 안에는 1984년에 세워진 수송유선생강학비(秀松柳先生講學碑)와 춘곡강공한익송은비(春谷姜公漢益頌恩碑)가 있다.

할아버지 모정에서 철륭할아버지 쪽으로 가는 논두렁에는 1996년 2월에 세운 효열부파평윤씨사적비(孝烈婦坡平尹氏事蹟碑)가 서 있다. 또한 신림농협창고 앞으로는 효열부동래정씨기적비(孝烈婦東萊鄭氏紀蹟碑), 방호지선계기적비(方壺止善契紀蹟碑), 성당고흥유씨공추모비(誠堂高興柳氏公追慕碑), 농은고흥유공추모비(農隱高興柳公追慕碑), 방은거사유공추모비(方隱居士柳公追慕碑), 송은장흥고공제건추모비(松隱長興高公濟建追慕碑) 등 7기의 비석이 줄지어 서 있다.

[정보제공]

  • •  고남규(남, 1939년생, 신림면 가평리 가평마을 이장)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