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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1797
한자 黔堂浦
영어음역 Gumdangpo
영어의미역 Gumdangpo Port
이칭/별칭 금음당포(今音堂浦)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시설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 월산리
시대 조선/조선,근대/근대,현대/현대
집필자 변남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포구

[정의]

조선 시대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 월산리 검당마을에 있었던 해상 포구.

[개설]

검당포(黔堂浦)는 조선 시대에 농도가 진한 소금물[염탕수]을 큰 솥에 넣고 불을 지펴 다려 만드는 화염의 생산지로 유명하다. 검당포의 지명 유래는 두 가지가 있는데 선운사를 창건한 검당선사 또는 화염을 굽는 벌막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검당]와 관련된다는 설이 있다. 전언에 의하면 1400여 년 전 검당선사선운사를 창건할 당시 검당포 바닷가에 진흙으로 염정을 만들고 도적들에게 소금 굽는 법을 가르쳐 소금을 구워 살도록 하였다. 그 결과 그들은 그 은혜에 보답하여 해마다 선운사에 소금을 바치게 되어, 이를 보은염이라 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검당포는 “무장현(茂長縣)의 북쪽 35리에 있다”고 하였다. 지금의 심원면 월산리 검당마을의 남서쪽에 에 해당되고[검당포 좌표 N35° 32′ 05.3″, E126° 33′ 07.6″], 부안과 마주하는 곰소만[줄포만]의 남쪽 해변으로 고창군 서쪽 해변에 있으며, 선운사와는 화산마을의 마리재를 넘어 통한다.

[구성]

일반적으로 염탕수는 힘든 과정을 거쳐 얻게 된다. 소금기를 머금은 갯벌을 수차례 쟁기로 갈아엎어 말린 다음 그 흙을 한곳에 모아 바닷물을 덧 부어 염탕수를 얻는다. 그러나 검당포에서 염탕수를 얻는 방법은 특별하였다. 검당포에서는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자연 염정에서 직접 염탕수를 길러다 솥에다 넣고 증발시켜 소금을 만들었다고 한다.

따라서 소금을 굽는 벌막이 여러 곳에 만들어 지고 화염 생산이 번성하게 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무장현에 염소(鹽所)가 한곳 있는데, 소금을 굽는 가마[盆]가 30개가 있으며, 무장현의 북쪽 금음당포(今音堂浦)에 있다”고 하였다. 근대 시기 수다동마을의 경우 4개의 가마가 있었던 것에 비하면 검당포는 규모가 매우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등 문헌 기록에 의하면, 검당포 인근 바다에는 염탕수가 천연적으로 나오는 샘[鹽井]이 있었다. 해안에서 2리 정도 바다로 들어가는 곳에 있었다. 사람들은 바닷물이 나가기를 기다렸다가 앞을 다투어 자연 염탕수를 길러다 다려서 소금을 만들었다[鹽井 在黔堂浦入海二里許 其水白而醎 土人俟潮退 用桔槹汲之煮而 爲鹽]. 이렇게 힘들이지 않고 이익을 얻는 데는 오직 검당포 뿐이라고 하였다.

현재 검당마을 남서쪽 바다는 간척되어 ‘샘바다들’이라고 하는 들판이 되었는데 염정이 있었던 곳으로 보이며 이와 관련한 이야기가 수다동마을에서도 전한다. 검당포에서는 꼭지만 틀면 염탕수가 쏟아져 나왔고 그 물로 소금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하루는 선운사검당선사가 와서 진흙으로 염탕수가 나오는 구멍을 막아버려 나오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언제부인지 보은염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염정에는 해수찜 목욕탕이 지어졌다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祖實錄)』기록이 있다. 1448년(세종 30) 전라도 감사의 요청에 의하여 “무장현의 염정에 목욕간(沐浴間)을 지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목욕하여 병을 낫게 하였다.”는 것이 그것이다. 또 1538년(중종 33)에 계림군(桂林君) 유(瑠)가 무장현의 목욕간으로 목욕하러 갔다는 기록도 있다.

이 두 건의 기록과 관련한 내용은 전언에서도 확인된다. 검당포의 남쪽에 있는 월산마을 동남쪽에 욕실촌이 있었고 검당선사가 목욕을 했던 곳이라고 주민들이 전하고 있다. 문헌 기록에 보이는 염정과 목욕간일 가능성이 높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무장현약수향(藥水鄕)이라는 향, 소, 부곡이 있었는데 “염정을 약수(藥水)라 칭한다.”고 하여 금당마을이 약수향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현황]

1970년대에 산림보호법의 시행으로 땔감을 구하기가 어렵게 된데다 천일염 제조법이 일반화되면서 경쟁력을 상실하여 폐업되면서 생산이 중단되었다. 따라서 현재 검당포에서는 소금이 생산되지 않으며 주변 바다 또한 간척되어 포구 흔적도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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