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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800705
한자 金質
영어음역 Gim Jil
이칭/별칭 문소(文素),영모당(永慕堂)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칠암리 819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동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효자
출신지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칠암리 819 지도보기
성별
생년 1496년연표보기
몰년 1561년연표보기
본관 안동

[정의]

조선 전기 고창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문소(文素), 호는 영모당(永慕堂). 아버지는 찬의(贊儀)를 지낸 김복중(金福重)이다.

[활동상황]

김질(金質)은 천성이 온순하고 단정하며 효심이 지극하여 양친을 지성으로 모셨다. 어머니의 명에 따라 1528년(중종 23) 진사시에 올랐을 뿐,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만 전심하였다. 1508년(중종 3) 어머니의 상을 당해 여막(廬幕)에 있는데, 밤 사이에 한 길이 넘는 눈이 내렸으나 여막 둘레에만 눈이 쌓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그곳을 제청산(祭廳山)이라 불렀다.

또한 지극 정성으로 모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직접 흙짐을 져서 분묘를 만들고, 아버지가 생전에 좋아했던 꿩고기를 매년 제사상에 바쳤다. 그러던 어느 해 꿩고기를 구하지 못해 통탄하자 꿩이 부엌으로 날아들었다고 한다. 또 제사에 쓸 간장을 쥐가 흐려 놓아 종일토록 통곡하였더니, 밤새 쥐들이 장독 아래에 떼를 지어 죽어 있었다고 한다.

시묘살이가 끝나자 상복을 벗고는 그 자리에 서실(書室)을 만들고 학문으로 여생을 마쳤다. 이에 김인후(金麟厚)가 영모당이라고 편액을 써서 걸어 주고, 유희춘(柳希春)이 기(記)를 썼다. 명나라에서 사신을 보내 『동국행의록(東國行誼錄)』을 채집할 때 그를 으뜸으로 천거하였다고 한다. 기대승(奇大升), 양응정(梁應鼎) 등과도 교유(交遊)가 두터웠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 『영모록(永慕錄)』, 『육사자책설(六事自責說)』이 전한다.

[묘소]

묘소는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칠암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효행으로 정려가 내렸다. 1613년(광해군 5) 안동김씨 문중에서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칠암리 영모당 자리에 도암서원(道巖書院)를 지어 배향하였다. 도암서원은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36년 후손들이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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